지방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지방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 원도연
  • 승인 2014.10.14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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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24년이 흘렀다. 정권이 다섯 번 변하고 관료들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은 것은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불신과 폄하다. 지방자치가 아무리 발전해도 중앙정부가 절대로 놓지 않는 것은 재정자치이다. 올해 시도지사협의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4년 현재,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을 분담하는 국고보조사업은 무려 1천여 개에 이른다. 국고보조사업 중에는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 영유아보육 등 당연히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업들이 포함되어 있다. 기초연금은 25%, 영유아보육은 35%, 기초생활급여는 20%를 지방이 부담해야 한다. ‘광은 대통령이 팔고 부담은 지자체에 떠넘긴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지방재정학회가 분석한 내용에 의하면 2000년대 후반 40조원의 국고보조사업이 올해는 약 60조원으로 늘어났고, 반면에 국고보조율은 70%에서 60%로 낮아졌다는 것이다.

 인구는 줄고 산업발전은 더디며, 기업을 유치해도 고용은 이루어지지 않는 지방정부로서는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전국의 모든 지자체 단체장들은 여야를 가리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게 되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목표는 국가예산 확보다. 지자체에 가용자원이 없으니 대부분 신규사업들은 오로지 중앙정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 정치이념과 특화된 지역발전전략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예산을 따내느냐가 단체장의 능력치가 된다. 고위 관료출신의 단체장들이 점점 선거에서 유리해지고 좋은 점수를 받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대권을 노린다는 여야의 거물 정치인들이 단체장으로 출마할 때 가장 큰 무기로 꼽는 것이 국가예산 확보라는 명분이다. 국가예산 앞에는 여당도 야당도 없는 셈이다. 민선 6기에 들어서면 많은 단체장들이 성장중심에서 내발적 발전모델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지만, 예산도 없는 내발적 발전전략은 공허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국회의원들도 국가예산 확보에 목을 매기는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가의 미래전략을 구상해야 할 정치인들이 너무 쉽게 국가예산확보를 정치적 목표로 삼아버린다.

 지방정부만 중앙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다. 참여정부가 개발한 지역혁신사업의 기본정신 가운데 하나는 상향식 의사결정이다. 지역이 사업을 제안하고 중앙정부가 심의하여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 방식이 중앙정부에게 꽃놀이가 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지역혁신사업의 선봉이었던 산자부는 매년 각 지역으로 R&D사업을 내려보내면서 공모제를 도입했다. 공모방식은 반드시 심사와 평가가 따른다. 그 과정에서 갑과 을이 분명히 생겨났다.

 이 방식은 어느덧 농림부와 안행부, 교육부 등에서 보편적인 방식이 되었다. 교육부는 누리사업, BK사업, SK사업, 링크사업, CK사업 등등 이름을 바꿔가면서 모든 지방대학을 줄세우고 있다. 농촌활성화사업도 마찬가지다. 일년 내내 공모와 심사, 평가가 이루어진다. ‘지방은 중앙의 식민지’라는 강준만 교수의 말은 절대로 과언이 아니다. 지방에 산다는 그 이유만으로 우리는 늘 중앙정부의 입맛에 맞는 아이디어(국책사업)를 발굴해야 하고, 심사를 받아야 하고 선정이 되고 나면 끊임없이 평가와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 산업단지는 산자부의 식민지고 농촌은 농림부의 식민지이며 지방대학은 교육부의 식민지다. 이제 모든 지방도시는 아전도시가 되어 버렸다.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자주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오로지 누가 더 중앙에 강하고, 튼튼한 끈을 대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정치력과 능력을 평가하게 되었다. 그러니 사람답게 살자면 서울로 갈밖에.

 그러나 지방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래서 강준만 교수는 ‘지방식민지 독립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그 투쟁에 이제는 지방의 지식인들이 응답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과감하게 지방재정을 확대하고, 지방정부에게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지방자치 24년이면 이제 믿어줄 때도 되었다. 지방도 중앙정부만큼은 일할 능력이 있고 열정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지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대표성이 강화되는 미국식 상원제도의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단순하게 인구수대로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국토와 공간을 대표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지금의 낡은 행정구역을 혁신하는 지역구조의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원도연<원광대 교수/문화콘텐츠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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