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누군가의 투명인간 되고자 한다
나도 누군가의 투명인간 되고자 한다
  • 김보금
  • 승인 2014.10.12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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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우리 지역 여성들이 모여 세 번째 전북여성젠더 축제를 치렀다. 강원도에서 경상북도까지 우리 센터와 유사한 여성기관장과 임원들 30여명이 한옥마을에서 하룻밤을 자고 우리 행사를 참관하고 돌아갔다.

 방문 이유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대생부터 70대 여성까지 천여 명이 모여서 토론하고 특강도 듣고 단체별 활동 내용을 부스를 통해 제공하는 정보내용을 확인함이었다. 사실상의 속내는 생각과 주 활동이 각각 다른 여성단체들이 공동으로 수행한 이번의 행사에서 주제를 결정하고, 주요내용을 정하고, 행사 전반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구구한 견해들을 어떻게 조율하고 융합할 수 있었는가를 파악하고 싶은 거였다.

 사실 처음에 함께할 사업을 논의할 대만 해도 서로 의견차이가 너무 컸었다. 나는 그것을 하등 이상한 일로 여기지 않았다. 모두의 견해를 긍정적이라는 관점에서 이번의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다 보니 좀체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필요한대로 구원투수가 되어주는 손길이 내 곁에 있음을 믿게 되었다. 그로부터 나는 어느 누구의 힐문에도 어떤 인물의 평가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때론 도무지 실현 가능성이 없을 것 같은 버거운 책무까지도 기꺼이 떠안았다.

 완벽할 만큼 꼼꼼하게 일처리를 잘해주는 우리 센터의 그녀(수호천사)가 있었기에 모든 일이 가능했다. 어느 조직이나 그룹도 그러하듯 ‘조용한 영웅’이 있기에만 발전할 수 있을 터였다. 행사를 마치고 나서 박수와 갈채는 대표인 내가 다 받았지만, 사실은 투명의 수호천사인 ‘조용한 영웅’에게 그 공을 돌려줘야 할 것을 내내 생각했다.

 투명인간들의 특징이며 공헌에 관한 베스트셀러를 눈여겨 읽게 되었다. 데이비드 츠바이그(David Zweig)의 저서 <인비저불(Invisibles)>이다. <인비저불>에는 성공한 전문가들을 만나 취재한 결과 놀랍게도 조직의 곳곳에 투명인간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공통점을 분석한 책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주위에도 일 자체에 성취감을 느끼며 업무에 충실하며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완주군의 A취업설계사 생각이 났다. 그녀의 역할은 취업할 여성들을 기업체에 연계해 주는 것이 주 업무이다. 우리 센터 전북 8개 군 단위에서 22명의 취업설계사들이 한 달 동안의 취업연계 활동을 입력하고 특별한 취업 사례를 여성가족부에 보고하는 내용이 있데 이번 달의 사례를 확인하던 중이었다.

 여성취업 사례를 썼어야 했는데 웬 남성취업자 이야기가 올라왔다. 사연인즉 40대 후반의 B과장은 제조업부품업체 과장으로 있으며 우리 교육생들 직업교육에 강의도 하고 회의에 참여할 정도로 믿음직한 직장인이었다. 그러한 그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게 되어 졸지에 실업자가 된 것이다. 한참 돈이 필요한 가장으로서 한순간에 실업자가 되고 말았으니…….

 완주군 취업설계사 A는 다른 구직여성과 함께 자동차업체 동행면접을 하던 중 구직회사에서는 간부급 차장으로 남자도 함께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즉시로 B과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바쁜 일정 중에도 그를 취업으로 연계시키기 위해서 동행면접을 시행하고 그가 얼마나 성실하고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가를 여실하게 알렸다. 해당 회사에서는 A취업설계사의 진정성을 평소에 익히 알고 있었는지라 처음에 제시한 연봉에 5백만 원을 더 얹어서 4천5백만원으로 연봉을 협상하기까지 일사천리로 속결해 주었다.

 B과장은 현재까지 회사에서 아주 잘 근무하고 있다. 전에 다니던 회사는 문을 닫았지만 B과장이 최선을 다하여 근무한 과거의 성실성을 높이 살 줄 알고, 1년에 4천여 명을 취업시킨 22명의 조용한 영웅들인 우리 취업설계사들을 나는 기어이 <인비서블>의 저자가 이야기한 투명인간의 반열에 올리고자 한다.

 그러고 보면 곳곳에서 투명인간들이 움직이고 있다. 이른 아침에 만나는 수영장 여성청소원은 수영장 이용자들이 입을 모아 한목소리로 칭찬한다. 하루 몇백 명이 이용하는 수영장이 그녀의 노력 하나로 항상 깨끗한 것이다. 우리 센터의 경비아저씨는 이미 투명인간의 경지를 넘어섰을까? 그분이 오신 뒤로는 공터 곳곳이 상추밭으로, 고추밭으로 바뀌었고 입구의 안내에서 주차 안내까지 방문객들의 불편함을 말끔하게 씻어내 준다.

 나도 하루에 한 분씩 투명인간을 생각해내고, 그분에게 감사하는 진정을 내 삶의 근간으로 삼고 싶다. 나 스스로도 누군가의 투명인간이 되어서 하루하루 더 많이 파이팅 하게 되지 않을까 해서다.

 김보금<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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