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성밟기 축제
고창 성밟기 축제
  • 진동규
  • 승인 2014.10.0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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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에 가면 모양성 밟기 축제가 있다. 모양성은 백제시대 모양부리라 불렸던 지명으로부터 연유된 것이라고 한다.

 성은 어디에나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성이 있다.

 국가의 형성단계에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리라. 힘의 상징이다. 가족을 지켜내는 일, 부족을 지켜내는 일이었으리라.

 유목민족의 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질기고 질긴 심줄 같은 철학 아니었겠는가. 힘깨나 쓰는 젊은이들 남정네들이 사냥에 나가면 남겨지는 가족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무엇이었겠는가. 우선은 잘 숨겨 놓아야 한다. 땅벌들이 집터를 고르듯이, 개미들이 집터를 찾아 대이동을 감내하듯이 은신처를 골라서 철저한 방책을 만들어 놓는 일이었다. 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을 뚫고 집을 마련하는 것이나, 까치가 높은 가지 끝에 둥지를 차리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비탈진 지형을 선택하고서도 말뚝을 박아서 방책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 만약을 대비해서 손쉬운 무기를 준비해 두어야 한다. 기어올라오는 적들에게 돌보다 위력적인 날벼락 무기가 어디 또 있겠는가. 성 둘레에 해저를 만드는 것이 축성의 기본처럼 되어 있는데 강물이 휘돌아 가지 않으면 일부러라도 물길을 둘러놓고 싶은 욕망이 잠재하고 있었을 터이다. 하다 하다 안되면 뜨거운 물이라도 퍼부어야 하지 않겠는가.

 모양성 밟기에 나선 색색옷 곱게 차려입은 여인네들이 있다. 머리에 돌 하나씩을 이고 있는 것이다.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세 바퀴 돌면서도 머리에 돌 하나씩은 꼭 이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성밟기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경건한 믿음은 색색 옷만큼 다양해지기도 했다.

 한 바퀴 돌면서는 다리가 아프지 않게, 두 바퀴 돌면서는 다리가 튼튼하게, 세 바퀴 돌면서는 다리 좀 시원하기로 변했다. 수험생들을 둔 엄마는 한 바퀴도 자식 시험준비 잘하라고, 두 바퀴도 자식 시험 잘 치르게 건강히 지내라고, 세 바퀴도 자식 좋은 학교 가라고 하는 것이다.

  변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다. 모양성 주변으로 쑥부쟁이가 피어나고 구절초가 피어 있다. 해마다 피우는 그 꽃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이 변했다.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노래가 달라졌다. 그들의 춤사위가 또 새로 와졌다. 꽃도 꽃의 향기도 달라져 있지를 않은가.

  성밟기에 나선 아오자이 입은 여인의 모습은 얼마나 예쁜가. 이 땅의 새댁이 아닌가. 모양성 뜨락 저만큼 기모노 입은 여인이 간다. 가득히 피어 있는 구절초의 해맑은 꽃 빛깔이 기모노를 향으로 감싸고 있지를 않은가. 왕대밭의 치파오 입은 여인은 ‘비단이장수 왕서방’이 아니다. 왕서방의 딸도 아니다. 이제 이 땅의 아리따운 새댁이 아닌가.

  마유주다. 그렇지 마유주지. 에델바이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뜯어 먹고 사는 말의 젖으로 만들었다는 마유주 한 잔을 마시고 싶었다. 세계 4대 축제로 꼽히는 몽골의 축제에 갔을 때였다. 고삐를 바투 잡으며 내가 탄 말까지 몰아주던 울란바토르 눈매가 고운 처녀, 지금 모양성까지 와 새터를 다지는 새댁으로 있지를 않은가.

  몽골대사님, 아니 대사 사모님은 뭐하시는가요. 새터를 다지는 저 새댁에게 게르 한 채 차려주고 마유주랑 그 후룩 후룩 소리를 내 먹던 양고기 국수솜씨 선보이게 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즐비한 먹을거리 텐트 옆에 말입니다.

  고창 성밟기 축제는 진한 인상으로 남는다. 긴 울림이 신선한 그림 하나를 새겨주었다.

 진동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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