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교학사 교과서 구하기’ 너무 지나치다
교육부 ‘교학사 교과서 구하기’ 너무 지나치다
  • 이동백
  • 승인 2014.10.06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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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한국사 국정화 시도에 이은 교과서 선정 절차의 변경이 도를 넘고 있다. 한국사 국정화 시도에 대해 국책연구 기관인 한국교육개발원이 운영하는 교육정책네트워크 정보센터가 계약을 맺은, 8개국에 대한 자기 나라 국사 교육실태를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미국·일본·영국·중국·독일·핀란드·프랑스·캐나다 등 모든 나라에서 자국사를 국정교과서로 가르치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었다.

 미국과 핀란드·프랑스·영국 등 4개국은 자국사 교과서를 자유발행제로 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처럼 검정제로 하는 나라는 일본·중국·독일 등 3개국이었다. 캐나다는 검정제와 자유발행제의 중간 단계인 인정제를 적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1986년부터 국정제를 폐지하고 현행 검정제를 유지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국정제는 국가가 직접 한 종류의 교과서를 만들어 모든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사용토록 하는 제도이며, 검정제는 개인이나 출판사가 여러 종류의 교과서를 만들어 국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심사를 거쳐 사용하는 제도다. 자유발행제는 개인과 출판사가 자유롭게 교과서를 발행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해방 뒤 중·고교 역사교과서를 검정제로 유지해 오다가,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4년 국정제를 처음 도입했다. 그 뒤 국정교과서에 대해 ‘정권 찬양 교과서’, ‘역사 왜곡 교과서’라는 논란이 불거지자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2년 중학교 <세계사> 교과서부터 점차 검정제로 바뀌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검정으로 바뀌었고, 중학교 <역사>는 2010년에,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는 2011년에 검정교과서로 바뀌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조사에 의하면 국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을 비롯하여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도입하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역사의 퇴보이며, 국가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이 한국사 국정화가 극심한 반대에 부딪치고 있는 가운데 교육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작년에 몸살을 알았던 교학사 교과서를 살리기 위해 교사들의 고유권한인 교과서 ‘선정권’마저 부정하는 치졸함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국무회의는 학교에서 한 번 선정한 교과서를 변경할 경우, 학교운영위원회의 출석위원 2/3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하는 등『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학교운영위원회 구성원들 대부분 친(親) 교장성향인 경우가 많아 출석위원 2/3 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하는 것은 사실상 교과서 재심의를 차단한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는 지난해 무리한 선정으로 온 국민의 분노를 샀던 교학사 교과서 선정변경을 어렵게 하려는 꼼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교육부가 교사들의 교과서선정결과를 학교운영위원회에 올릴 때 “동일교과 전체교사의 개인별 평가표를 합산해 3종을 선정한 후, 순위를 정해 학운위에 추천”하도록 하는 예전 절차를 무시하고, 교과서 선정순위를 표기하여 올리지 못하도록 ‘교과용 도서 선정 절차 매뉴얼’을 바꾼 사실도 확인되었다. 이같은 조치는 교과서 주문 이전에 교과서 선정결과를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는 위법적 조치에 이어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을 바꿔 교과서 재선정을 어렵게 하는 조치에 뒤따르는 것으로 교학사 채택률을 조금이라도 높여보려는 교육부의 치졸한 교학사 비호 시리즈일 뿐이다.

 교사들은 교과서를 선택하기에 앞서 한 달 이상에 걸쳐 내용을 분석한다. 반면 대부분 학부모와 지역위원으로 구성된 학운위원회는 10과목이 넘는 교과목에, 수십 종에 달하는 교과서를 몇 시간 동안 검토하고 순위를 매겨야만 한다. 과연 후자와 같은 방식으로 교과서가 제대로 선정될 수 있을까? 사정이 이러한대도 교사들의 1순위 추천결과를 학운위에 올리지 못하도록 한 조치는 교사들의 교과서 선정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노동부에 노동이 없고 교육부에 교육이 없다’는 농담이 회자하고 있다. 교육부는 더 이상 교육을 왜곡하지 말라. 교육부는 당장 국민들이 이미 지난해에 심판을 내린 교학사 교과서 비호를 위한 꼼수를 중단하라.

 이동백<전교조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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