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마텔 장편소설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장편소설 ‘파이 이야기’
  • 김효정
  • 승인 2014.09.2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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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 관람 24.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당장 ‘오늘 점심 메뉴로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라는 간단한 선택부터 시작해,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까지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호랑이와 함께 22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한 소년 ‘파이’의 이야기를 담은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도 선택에 관한 소설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파생시킨 여러 관계들은 한 소년의 성장과도 맞닿아 있다.

 열여섯 살 인도 소년 ‘파이’네 가족은 불안한 나라 정세로 인해 캐나다로 이민을 결정한다.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부모님은 미국의 대형 동물원에 동물들을 팔기로 하고 동물들을 태우고 태평양을 건너가지만 거친 풍랑에 배는 난파되고 파이는 구명보트에서 하이에나와 오랑우탄, 얼룩말, 벵갈 호랑이와 함께 살아 남는다.

 사랑하는 가족을 한순간에 잃었지만 그 슬픔을 되새기기엔 파이의 상황이 여의치 않다. 급기야 하이에나는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죽이고 그 하이에나는 또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직접 목도하면서 파이는 생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여기서 파이는 중요한 첫 번째 선택을 한다. 세상 가장 깊은 바다에 빠져 죽을 것인지, 아니면 맹수에게 잡혀 먹힐 것인지의 기로에서 고심하던 파이는 문득 깨닫는다. 혼자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맹수와 함께 있다는 두려움보다 더 크다는 것을. “그가 죽으면 절망을 껴안은 채 나 혼자 남겨질 테니까. 절망은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니까. 내가 살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리처드 파커 덕분이었다. 그는 나를 계속 살아있게 해주었다” 호랑이와의 공생을 선택한 파이의 이러한 고백은 그의 선택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호랑이는 지금 파이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고 그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는 동안 파이는 살아있음을 느끼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한다.

 또 파이는 채식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살기 위한 여러 수단들을 선택한다. 살기 위해 바다거북의 살을 뜯어먹고, 벵갈 호랑이의 똥에 군침을 흘리며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살아 있는 것들을 잡아 먹는다.

 행복한 가정에서 꾸밈없이 자라던 소년이 어느 날 문득 홀로 남겨진 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끝없는 절망과 공포, 처절한 고독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는 선택과 그로 인해 형성되는 ‘관계’들은 소년을 성장시킨다. 인간과 동물, 인간과 신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믿음은 세상의 모든 것과 공존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이 작품은 이안 감독이 처음 시도하는 3D 영화로 지난해 개봉되었다. 원작의 무한한 상상력과 풍성한 이야기 줄기를 스크린으로 옮겨온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도 원작 못지않은 감동을 선사해 준다. 컴퓨터 그래픽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지만 원작이 전하려 한 메시지를 담아내기 위한 감독의 수고로움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권태와 절망으로부터 자신을 각성하게 만든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통해 삶의 의지를 불태웠던 파이처럼 지금 나를 각성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나에게 있는지 한번쯤 되돌아 보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때로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파이의 그것처럼 막막한 순간들이 있지만 그 각성의 시간 안에서 나의 선택은 분명 최선의 길이 되어 줄 것이다.

 김효정<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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