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는 구도심과 신도심의 경계가 없다. 오히려 밤이 되면 구도심은 더 아름다워진다. 거리화가와 거리공연이 더욱 활발해져 지역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이 구도심 골목으로 몰려든다. 그래서 구도심 골목을 일컬어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과거 바르셀로나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곽도시였다. 성벽은 도시를 방어했다. 1818년 바르셀로나 인구는 8만3,000명이었다. 32년이 지난 1850년에는 18만7,000명으로 급증했다. 1헥타르당 인구가 런던 86명, 파리 356명, 마드리드 384명인데 반해 바르셀로나는 무려 859명으로 폭발할 정도였다. 열악한 도시 인프라는 시민들의 위생을 위협했다. 성벽 주변에 몰려 사는 노동자 빈민들의 삶은 참혹했다. 바르셀로나는 수년간에 걸쳐 스페인정부에 성벽을 허물어 줄 것을 청원했다. 그 결과 1854년 8월 스페인 정부는 성벽을 허물고 신도시 건설을 결정했다. 오늘날 바르셀로나는 성벽 안쪽에 있던 구도시 부분과 1854년 이후 건설된 신도시로 구분되지만 정작 경계는 없다.
구도심은 밤이 더 아름다운 곳
신도시가 건설되자 부자들은 신도시 지역으로 옮겨갔다.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가 선봉에 섰다. 구엘공원(전원주택지)과 까사 밀라(아파트), 까사 바틀로(상가) 등이 신도시에 건축됐다. 반면, 구도시는 노동자, 어부 등 하층민들의 집단 거주지역으로 전락했다. 구도심권인 라발지역과 보른지역은 밤이면 마약에 취한 사람들, 창녀, 도둑들이 득실거리는 소굴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버려졌던 구도시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시에서는 항구 주변을 깨끗하게 정비했다. 가장 낙후된 라발지역의 중심에 현대미술관을 개관했다. 바르셀로나 도시 재생의 가장 큰 특징은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신선한 공기가 유입되도록 다중집합기능이 뛰어난 공공시설을 낙후지역에 접목시켜 경계를 허물고 소통하게 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보른지구가 살아난 것은 더 드라마틱하다. 슬럼가인 이곳에 임대료를 받지 않아도 자영업자가 들어가기를 꺼렸다. 1800년대 들어오면서 경제력이 취약한 예술인들이 이곳에 들어가 공방을 만들고 창작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릇공예, 유리공예, 섬유공예, 화가 등 소규모 공방들이 골목 안으로 모여들었다. 슬럼가였던 이곳이 지금은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낭만적인 곳으로 자리 잡았다. 필수관광코스가 됐다.
야간관광 콘텐츠가 풍부해진 바르셀로나. 그 중심은 거리화가와 행위예술이 밤늦게까지 펼쳐지는 람블란스거리와 조그만 광장만 있으면 거리공연이 펼쳐지는 보른지구와 라발지구의 밤. 그곳에서 관광객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선물하는 거리예술가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대한민국 대표 역사문화관광도시 전주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인터뷰1> 마르가 도밍고(Marga Domingo) 보른지구상인회(Born Comerc) 회장
- 보른지구는 어떤 곳인가.
▲ 보른지구는 피카소미술관과 소수 갤러리만 있었다. 쇠락한 주거공간이어서 가난한 이민자들이 들어왔다. 피카소미술관이 미로 같은 골목 안에 있어 미술관을 찾는 외국관광객을 대상으로 소매치기가 극성을 부렸던 우범지역이었다. 보른지구 부동산가격은 하락했다. 1992년 올림픽을 치른 이후 관광객들이 증가하자 일부 자본가들이 보른지구내 싼 건물을 매입, 리모델링한 후 임대사업을 시작하면서 활기를 되찾아 지금은 대표 관광코스가 됐다.
- 지금의 보른지구의 특징은 무엇인가.
▲ 낮보다 밤이 아름다운 곳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많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보른지구 길가에 공방과 전시판매장을 마련해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간선도로 주변이 활성화됐다. 자연스럽게 이곳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자 저소득층 이민자들은 늘어나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보른지구를 떠나기 시작했다. 빈민슬럼가였던 이곳이 지금은 창작예술거리로 변모했다.
- 보른지구를 운영하는 주체와 운영방법은 무엇인가.
▲ 2012년 보른지구 상인들의 자치모임인 ‘보른지구상인회(Born Comerc)’가 결성됐다. 2년이 지난 지금은 102개 업소로 확장됐다. 2002년부터 수공예 등 젊은 아티스트들이 하나 둘 들어와 공방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영업시간을 낮에만 하다 보니 여전히 밤에는 어두워 시민들이 이곳에 오기를 꺼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상인들은 자발적으로 매월 15일 지구 내 모든 가게들이 밤 12시까지 문을 열기로 하고 실천했다. 또, 보른지구 발전에 기여한 사람을 선정해 ‘보른상’을 수여하는 행사를 마련하고 기자들을 초청, 영업시간 연장 배경과 시상 배경을 설명해 보도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이 밤에도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관광객들까지 찾기 시작했다. 지금은 매일 밤이면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밤이 아름다운 거리’로 탈바꿈했다.
- 야간관광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 체류형 관광도시가 되려면 무엇보다 야간관광이 활발해져야 한다. 연간 관광객이 500만 명을 넘는 전주시가 야간관광을 고민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관광지구 내 가게들이 일찍 가게 문을 닫아버린다면 관광도시라 할 수 없다. 보른지구 내 야간관광콘텐츠는 음식과 거리예술이다. 여기에 골목을 아름답게 밝히는 공방들이 있다. 이곳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즐겨 찾는 야간코스로 정착했다.
<인터뷰2> 아싼벡(Asanbek Koubatali) 람블라스 거리화가(10번)
- 람블란스 화가거리에는 몇 명의 화가가 활동하고 있나.
▲ 바르셀로나 람블란스 화가거리에는 70여 명이 시로부터 허가를 받아 활동하고 있다. 화가들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작업하는데 한 지점당 두 명의 화가들이 격일로 작업한다. 나는 10번 지점에서만 작업한다. 거리화가는 초상화, 캐리커처, 유화 등 다양하다. 관광객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현장에서 그려주고 현매한다. 초상화는 40유로, 사진으로 그리는 경우 60유로, 캐리커처 20유로, 유화는 크기에 따라 20~150유로까지 다양하다.
- 거리화가들의 수입과 운영방식은 어떻게 되는가.
▲ 수입은 작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초상화의 경우 하루에 10여 명을 그릴 경우 1일 수입은 평균 400유로(한화 54만 원 상당, 1유로=1,350원 기준) 정도 된다. 한 곳당 두 명의 화가가 작업하므로 화가당 6개월 작업하는 셈이다. 능력이 뛰어난 화가는 연간 억대 수입도 있다. 화가거리는 매일 밤 11시까지 운영된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바르셀로나는 거리화가 선정을 위해 각계 인사들로 위원회를 구성해 거리화가를 신청한 화가들을 대상으로 면접과 실기테스트를 거쳐 최종적으로 70여 명을 선정, 활동지점을 배정해준다. 신청자격에 국적 제한은 없다. 단, 불법체류자 등 기준에 미달할 때 선정심사에서 제외시킨다.
- 아싼벡은 스페인 출신인가.
▲ 아니다. 키르키즈스탄 출신이다. 대학시절 미술학도였던 95~96년 바르셀로나에 여행을 왔다 매력을 느껴 97년부터 이곳에서 작업하고 있다. 작년 겨울에는 한국 탤런트인 윤은혜 씨가 이곳을 방문해 내가 초상화를 직접 그려준 적 있다. 윤은혜 씨 사진은 지금도 내 핸드폰에 담겨 있다.
- 화가거리 운영의 가장 큰 효과는 무엇인가.
▲ 야간관광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다는 점이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그렇다고 시에서 특별히 경제적 보조를 하지는 않는다. 대신, 거리화가들이 작업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가로등, 도로관리 등을 특별 관리해준다.
<인터뷰3> 다리오 시히스몬도(Dario Sigismondo) 골목 내 공방 화가
- 보른지구 골목상권은 어떠한가.
▲ 예전의 보른지구는 마약 등 청소년 범죄가 기승을 부렸던 어두운 뒷골목이었다. 낮에도 사람 통행이 거의 없는 슬럼가였다. 밤이면 마약 투여자들, 부랑자, 불법이민자, 소매치기들이 득실대 일반 시민들에게 이곳의 밤은 두려워할 정도였다. 하지만, 보른지구가 주는 보헤미아적인 분위기,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한 임대료 등으로 젊은 예술가들, 특히 기존 예술질서(경향)와 형식을 거부하는 아티스트들이 선호하는 지역으로 변모했다.
-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시에서 하는 역할은.
▲ 보른지구 발전은 시가 주도적으로 나서 추진한 게 아니디. 이곳 젊은 예술가들이 동료의식으로 힘을 합쳤다. 아티스트들이 동료 공방을 서로 찾아가 공연과 전시, 외부인 초청행사를 꾸준히 가졌다. 이런 활동을 지난 10여 년 간 지속한 결과 2000년대 들어선 시민들의 발길이 늘어났다. 어두운 보른지구가 자연스럽게 활기를 되찾게 됐다. 시에서는 각종 규제를 지구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선에서 완화해주거나 일부 지원해주는 정도다.
스페인 바르셀로나=한성천 기자
<자문위원> ▲배기철 전주기전대 교수
▲권대환 전주시정발전연구소 연구원
▲신진호 스페인 BCN solution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