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인상, 증세의 꼼수! 그래도 담뱃값은 올려야 한다
담뱃값 인상, 증세의 꼼수! 그래도 담뱃값은 올려야 한다
  • 김형준
  • 승인 2014.09.2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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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정말 담뱃값을 올릴 모양이다. 얼마 전 정부는 현재 2,500원 하는 담뱃값을 2,000원 올려 4,500원으로 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각종 금연 관련 정책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담뱃값만 오르는 것이 아니다. 주민세, 자동차세도 올린다고 한다. 그것도 무려 100% 인상! 정부는 담뱃세 인상은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것이고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은 취약한 지방재정을 위한 조치라고 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주장한 ‘증세없는 복지정책(솔직히 이것이 가능한가!)’을 포기한 것도 아니고 증세도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최근의 여론 조사를 보면 40% 이상의 국민이 이번 정부의 발표를 부족한 세수를 늘리기 위한 증세라고 대답했는데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조치이라는 판단(33.2%)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물론 증세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세금의 생명은 ‘조세정의’이라고 할 때 이번 조치가 서민생활에 가장 밀접한 담배, 자동차, 주민세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서민증세’, ‘부자 감세’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참여정부시절 당시 담뱃값 인상을 추진하던 정책에 서민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적극 반대했던 것도 바로 당시 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었다.

 그러나 이런 논란에도 과연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기는 하는 걸까? 대부분 전문가들은 일정 부분 효과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립암센터에서 발표한 지난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시행된 ‘흡연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04년 담뱃값을 500원 인상하자 흡연율이 1년 새 36.2%(2004년)에서 26.4%(2005년)로 급감했다고 한다. 담배가격 인상으로 국내 성인 흡연율이 2004년 대비 2005년 약 9.8%p 감소했는데 이는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감소율인 1.7%p의 약 6배에 이르는 높은 감소율이라고 분석됐다.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담뱃값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담뱃값의 3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보통 OECD 국가의 담뱃값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맥도날드의 대표 햄버거인 빅맥 하나 가격으로 몇 개비의 담배를 살 수 있는지를 분석하는데 우리나라는 빅맥 하나의 가격으로 32.8개비의 담배를 살 수 있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다. 이에 비해 아일랜드(7.6개비), 뉴질랜드(7.7개비), 노르웨이(9.4개비)에서는 빅맥의 가격으로 반 갑도 구매할 수 없고, 호주에서는 6개비만 구매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19세 이상 남성의 흡연율은 43.7%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더 심각한 것은 청소년들의 흡연도 급격히 늘어난다는 점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시행하는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에 따르면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의 흡연율은 24.1%로 웬만한 국가의 성인 흡연율에 달하는 수치다. 이는 설문조사에 의한 수치일 뿐 실제로는 그보다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흡연율이 높은 것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있겠지만 가장 큰 부분 중 하나가 낮은 담뱃값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담뱃값 인상으로 불어나는 세수다. 이번 담뱃값 인상으로 세수는 2조 8,000억원이 늘어날 전망이다. 기존에 있던 건강증진세에 사치품에 붙이는 개별소비세(국세)를 추가하겠다고 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지방세인 담뱃세 일부가 중앙정부로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무리한 4대강 사업의 추진으로 생긴 재정적자와 늘어나는 복지 공약을 시행하기 위한 세수 마련을 위해 꼼수로 증세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오해를 벗어버리고 정부가 담뱃세를 올리는 것이 국민 건강을 위한 정책이라면 이번 늘어나는 세수를 적극적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정책에 사용해야 할 것이다. 사실 과거에도 1조가 넘는 담뱃세를 걷었지만, 금연 클리닉 등 흡연자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간 부분은 200억원도 되지 않았다. 건강증진기금의 절반은 뚜렷한 이유도 밝히지 않고 건강보험재정 등으로 들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담뱃값 인상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두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늘어난 재원으로 흡연율의 실질적 감소를 위한 흡연 캠페인과 금연을 위한 비가격정책에 대폭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흡연자의 금연을 돕는 방안을 마련해 그들이 낸 돈이 그들을 위해 쓰여야 할 것이다. 둘째는 지금까지의 치료중심의 건강 정책이 좀 더 체계적인 ‘전 국민의 질병 예방 및 건강증진 프로그램’으로 획기적인 방향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담뱃값 인상이 증세의 꼼수가 아니라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용기 있는 결단이라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형준<신세계병원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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