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토론 VS 국부론
풍토론 VS 국부론
  • 박재천
  • 승인 2014.09.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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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적 관점의 ‘풍토론’과 ‘국부론’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물론 우리에게 익숙한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풍토론’은 한 나라의 문화가 오랜 역사 속에서 단단해지면 자연적으로 외부에 알려질 것이라는 이론이다. 반면 ‘국부론’은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강해지면 그 나라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세계에 알려질 것이라는 이론이다. 문화가 융성하면 저절로 해외에까지 퍼지게 될까, 아니면 경제적 부강으로 인해 한 나라의 문화가 외부에 알려지게 될까.

 어릴 적부터 나는 한국의 문화가 ‘풍토론’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음악이나 문화는 특유의 개성이 강하고 독창적인 부분이 많아서 외국이나 다른 지역의 문화 관계자들에게 자연적으로 알려지고 흥미를 유발시키리라 생각했다. 이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우리 문화가 해외에 알려지게 된 다양한 계기 중 한 예로 1991년 설립된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일본국제교류기금-1972년 설립) 보다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예산 지급과 운영을 통해 다양한 나라와 문화교류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이로써 각개전투 식으로 한국의 문화를 해외에 알리던 연주가들과 문화예술가들은 체계적이고 빈번하게 해외에서 공연할 수 있게 됐다.

 해외 연주를 위해 다양한 국가를 방문하며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 것은 한국의 기업들이 이미 각국에 진출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한국 대기업 제품들이 곳곳에 즐비해 있었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전통문화보다 한국 기업의 제품을 먼저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을 해외 구매자들이 크게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다. 훌륭한 기술력으로 인해 한국을 향한 좋은 인상을 전해 받으며 우리나라의 부강한 경제력을 새삼 실감했다. 동시에 나는 한국의 부강한 경제력 덕분에 우리 문화가 세계에 알려지는데 보다 효과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됐다.

 중동지역에서 공연하게 됐을 때의 일이다. 두바이는 막강한 오일파워를 자랑이나 하듯 새로 지어진 빌딩과 번듯한 호텔로 가득했고 최고급 차량과 의류 등 초호화 명품들로 넘쳐났다. 이곳에 뉴욕의 맨해튼을 세우겠다는 심사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먼지 나는 공사장 한가운데에 번듯한 빌딩이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의 문화적 바탕과 소양을 짐작해볼 때, 나는 ‘오히려 문화적인 풍토가 약한 지역 인가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석유수출을 통해 경제적인 부강함은 이뤘을지 모르지만, 문화적으로는 다소 척박함을 벗어나지 못했다’라는 생각을 하며 상대적인 위안을 얻었다.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에 걸맞은 독특한 깊이의 문화를 이미 가지고 있고 한국 고유의 문화 풍토를 잘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 것이다.

 우리는 단단한 문화적 기반과 강성한 국부(國富)가 맞물려 문화와 경제적으로 동시에 힘을 갖춘 나라가 되었다. 이제 전통 분야의 예술가들은 조상들이 물려준 위대한 음악의 자산을 보다 소중하고 가치있게 여겨야 할 때이다. 이것은 개인의 힘으로 이룩한 것이 아닌 세대를 거듭하며 전수된 오랜 문화의 습관과 예술적 작업이 이뤄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단기간에 원조 수혜국에서 원조 공여국으로서 역할이 뒤바뀐 경제적 저력까지 갖추었으니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는 보다 자명해졌다. 좋은 문화적 풍토와 더불어 부강한 경제력을 갖추었으니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기에 금상첨화의 여건이다.

 더욱이 전북 지역은 판소리의 발상지이자 전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풍성한 문화적 기량과 소양을 바탕으로 예인들의 혼이 담긴 고장이다. 이에 따라 한국 전통 예술을 위한 인프라도 그 어느 지역보다 잘 구축돼 있다. 전주세계소리축제가 훌륭한 축제로 성장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굳은 풍토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지역에서 열리는(올해는 10월8일~12일) 대표적인 음악문화의 대향연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한국의 문화적 흐름과 경제적 현상을 따라 필연적으로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 잡을 것임을 확신한다. 이것은 조직위의 부단한 노력과 관객들의 지대한 관심과 참여로 해를 거듭 할수록 선명해지고 있다. 또한, 우리가 물려받은 위대한 문화와 경제적 부흥을 이뤄낸 이 시대의 요구이자 숙명이기도 하다. 이는 비단 전주시민과 전북 도민, 국악인과 전통 예술가들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의 문화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다.

 박재천<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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