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과 모르는 것
아는 것과 모르는 것
  • 조미애
  • 승인 2014.09.1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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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부쟁이와 오이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지리산 풍경을 보고 있으니 정녕 가을인가 싶다. 세상에 계절만큼 정직하게 제 모습을 조용히 드러내는 것이 또 있을까! 자연은 이처럼 있는 그대로를 내보이고 있는데 사람 사는 우리 세상은 옳고 그른 것이 분명하지 않은 채 자주 혼란스럽다.

신문과 방송에서 화제가 되고 있고 사회적 쟁점인 사안에 대하여 발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횡설수설橫說竪說한다. 옳고 그른 것이 분명 있을 것인데 마치 종횡무진하여도 이치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아 조리가 정연하다는 횡설수설이 가진 본래의 의미가 두서없이 이랬다저랬다 아무렇게나 떠든다는 뜻으로 오늘날 변질된 것처럼 중요한 사회적 문제들이 좌표마저 잃어버린 채 표류하고 있다.

음력으로 8월 27일은 공자탄생일이다. 몇 해 전 배를 타고 서해를 건너 공자님 고향을 찾아갔었다. 중국 영선항에서 배를 내려 곡부曲阜까지 가는 길은 옥수수 밭의 긴 행렬이었다. 팔월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받고 옥수수가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달리던 버스는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도착하였다. 공자의 사당인 공묘 대성전 안에 있는 공자상은 관복을 입고 앉아 엄숙하여 귀하고 위엄이 있었으며 마치 제왕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실제 공자의 모습은 공묘 성적전 서쪽 벽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 있는 공자는 허름한 옷을 입고 있으며 이마의 주름은 깊고 세파에 지친 행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긴 수염과 은은한 표정은 지극히 인자하고 자상하여 오래 잊을 수 없는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바로 당나라 때 오도자吳道子가 그린 ‘공자행교상’이다.

토론에 나서는 논객들을 보면 참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마치 잘 아는 것처럼 능숙한 어조로 말하는 경우에 있다. 보통은 화려한 달변으로 거침없이 설명하면 상대방이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통달하지 못한 상태로 전문적인 분야를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통달은 마음이 질박하여 곧고 정의를 사랑하며 남의 말을 자세히 듣고 처지를 잘 살피며 겸손한 자세로 상대방의 입장을 깊이 헤아리는 것이다.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부지위부지不知爲不知 시지야是知也’라 하여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라고 하였다. 안다는 것, 지知는 인仁의 필요조건이다. 배우기를 널리 하고 뜻을 독실하게 하는 것,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고 한다. 인을 행하는 것은 자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자아실현은 반드시 예禮에 의하여 조절되어야 비로소 도덕적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 도덕적 자아실현이란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중시여기는 것이다.

사람을 평가할 때 세 가지의 경지가 있는데 성인聖人이 첫째이고 인인仁人이 다음이며 군자君子가 세 번째라 했다. 공자는 성인이 아니라 인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인인이란 자기를 수양하여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어진 사람의 경지이다. 말하는 사람이 필히 새겨야 할 대목이다. 어느 날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서로의 꿈에 대하여 말했다. 호방한 자로는 고급 털가죽을 친구들과 함께 쓰다가 망가지거나 헤지더라도 아쉬워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고 한다. 겸손한 안연은 제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지 않고 공로를 과시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에 공자는 늙은이를 편안하게 해주고 벗들에게 믿음을 주고 어린아이들을 품어주고자 한다고 화답한다.

천하의 도가 사라진지 오래이니, 하늘의 진리를 알아가는 즐거움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기가 늙어가는 것조차 몰랐던 공자님 말씀을 삶의 목탁으로 삼아야겠다.

  조미애<詩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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