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와 중소기업
지역경제와 중소기업
  • 원도연
  • 승인 2014.09.1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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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여 년간 전라북도 경제정책의 방향과 목표는 기업유치였다. 전라북도뿐만 아니라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래 거의 모든 지자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대기업의 유치는 곧 지자체 최고의 성과로 평가받았다. 대기업이 오면 고용이 늘고 고용이 늘면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논리는 절대 진리에 가까웠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간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전북도민들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최대 과제로 꼽았고, 그 방법으로 대기업유치를 가장 선호했다.

 실제로 전북에는 지난 10년간 많은 기업이 유치되었다. 수도권의 비싼 땅값을 피하면서 상대적으로 수도권과 가까운 거리, 그리고 수출항만 등 인프라가 좋은 지역을 찾아 기업이 이동했고 충남과 전북이 가장 많은 기업을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기업유치가 곧 많은 고용으로 연결되고 그 결과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선순환의 구조가 만들어지지는 못했다는 점이었다. 왜 그랬을까. 우선 2000년대 이후 지역으로 내려오는 대기업들은 기업의 생산과정을 첨단화한 혁신형 구조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기업혁신을 고용의 관점에서 본다면 10명이 하던 일을 2-3명이 할 수 있게 하는 기술혁신이었고, 관리시스템의 혁신은 리스크가 있는 생산공정을 직접 수행하지 않고 하청 계열기업들에게 분산시키는 형태로 나타났다.

 결국, 대기업의 유치는 지역에서 기대한 만큼의 고용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당연히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기여를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70년대 산업화 초기 울산이나 포항과 같이 대기업을 통해 지역이 상전벽해 하는 상황은 올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대기업 유치가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은 서서히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점차 고용이 증대되고 있으며, 대기업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계열화가 지역사회에서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의 관점에서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고용을 늘리는 정책은 콧대 높은 대기업유치보다 오히려 지역의 중소기업에 주목하는 것일 수 있다.

지역의 중소기업은 그동안 악전고투를 거듭해왔다. 대기업이 혁신을 통해 생산원가를 줄이고 시장을 장악하면서 설 자리가 없기도 했지만, 지역에서도 ‘선택과 집중’의 원리가 작동하면서 ‘선택’되지 못하고 ‘배제’된 중소기업들이 너무 많았다. 특히 의류, 석재, 귀금속 등 노동력에 기반한 지역의 전통적인 산업들이 속절없이 무너지거나 중국과 동남아로 떠나갔다. 일자리를 잃은 이들을 당연히 대기업에서 받아줄 리 만무했고, 지역의 고용상황은 계속 나빠지는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이 악순환의 출발은 아이러니하게도 참여정부에서 시작되고 이명박 정부가 문제의식 없이 계승했으며 현 정부에서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지역혁신체계(RIS)가 중요한 원인을 제공했다. 지역혁신전략은 각 지역을 특화산업 중심으로 재배치하고 이를 위해 R&D와 인력양성을 지원한다는 진정한 선의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기본전략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R&D 지상주의’ 였고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산업고도화였으며, 대상은 첨단기술을 보유한 대기업들이었다. 이 전략과 방향성에 지역의 향토기업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고 지역경제 혁신의 걸림돌처럼 보여졌다. 이 전략이 지역경제를 지배한 10여 년의 결과는 지역내 경제공동체의 왜곡과 높아진 실업률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기간 동안 핵심공약의 하나로 지역 중소기업 육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취임 후 1년반 동안 중소기업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과 정책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정부에서 먼저 지역의 중소기업을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로 두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유치에서 고용확대로 경제정책의 중심을 전환하고 바늘구멍만큼이나 어려운 대기업 취업에 올인하기 보다는 중소기업의 고용능력을 확대시키는 전략이 나와야 한다.

 물론 중소기업이라고 고용의 천국이 아니고 대기업에 못지않은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 것도 결코 아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눈을 돌리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안정성이 떨어지고 보수가 낮으며 발전비전이 없으며, 무엇보다 폼이 안난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방정부 입장에서도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만큼이나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도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그래도, 그 틈새를 지방정부가 메워주는 정책이 자꾸 발굴되고 예산투자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한다. 좋은 기업을 찾아 널리 알려서 명예를 되찾아주고 애로기술을 해결해주며 낮은 보수를 일정기간 동안 충당해주는 지원책도 더 강화되어야 한다. 중소기업 살리기에 왕도는 없다.

 원도연<원광대교수/문화콘텐츠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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