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소리는 하나다
생명의 소리는 하나다
  • 이동희
  • 승인 2014.09.0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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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생때같은 청소년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어른들의 말씀을, 항해를 주관하는 이들의 지시를, 권력 있는 자들의 명령에 따른 결과가 죽음이었다. “가만히 있어라!”는 말을 고분고분 따른 결과가 산채로 수장되는 것이었다. 이제 어디에서 어른의 권위를 찾고, 지금 누구의 지시를 믿을 수 있으며, 어떤 권세의 명령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살리는 소리는 잦아들고, 죽임의 언어가 횡행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죽음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혈기왕성한 젊음이 조국의 부름을 받고 달려간 병영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전우애가 뜨거워야 할 부대에 오로지 폭력의 세습만이 계급의 권위를 지탱하고 있는 것인가? 부하를 내 몸처럼 보살피는 덕장은 사라지고 왕따를 부추기는 상관의 치졸함이 대세며, 부하의 잘못마저 내 잘못이라며 책임을 감수하는 용장 대신에 폭력으로 지휘력을 과시하려는 졸장들이 판치는 병영인 모양이다. 그러니 자살과 사고사와 병영사고로 생때같은 병사들이 신음하는 것이 아닌가.

 죽음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단식은 죽음마저도 전제한 자기희생의 결단이다. 의지가 관철되지 않으면 내 목숨마저도 스스로 내놓겠다는 결의의 표시다. 단식행위는 힘을 과시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반대로 가지는 최소한의 힘마저 스스로 소진시키는 행위다. 그럼으로써 상대를 위협하는 폭력이 아니라, 상대를 생명력으로 감화시키려는 인간적인 행위로 여겨왔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대부분 쟁점의 수용 여부보다 먼저 단식하는 이의 생명을 염려하는 것이 쟁점의 피아를 불문하고 전제되어 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세월호에서 희생된 학생의 학부모가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을 결행하여 목숨이 경각에 이르기까지 수수방관이다.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하나는 수만 명 시민들의 동조단식이고 다른 하나는 ‘죽을 테면 죽어라’고 악담을 퍼붓는 몰지각한 방식이다. 우리 사회가 어느새 이처럼 냉혈사회로 변질하였는지, 참으로 암담함을 넘어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한 느낌이다. “달에 갔다 왔지만,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고, 우주를 향해 나가지만 우리 안의 세계를 잃어버렸다”(반기문 UN사무총장)는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세계최고봉 14좌를 무산소 등정한 산악인이 홀로 고비사막을 횡단한 기록(R.메스너『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을 읽었다. 어떤 생명도 존재할 수 없는, 죽음 같은 정적과 침묵의 공간인 줄 알았던 사막에서 오히려 온갖 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모래가 흘러내리는 소리, 바람자락이 지나가는 소리, 심지어 자신의 맥박소리에 깜짝 놀라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사막은 죽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생명의 소리로 넘쳐나는 곳이라는 것이다. 생명이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막에도 끈질긴 생명은 오롯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주 수목원에 들렀다. 진초록으로 무성한 여름의 끝자락에 펼쳐진 숲은 숱한 소리들로 넘쳐났다. 온갖 새들이 생명의 환희를 구가하는 소리, 갖가지 소리로 교향악을 이루는 풀벌레 소리, 가는 여름을 붙잡아 두려는 듯 그악스러운 매미들의 자지러지는 소리, 자주 내린 비로 넘쳐나는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 등등 그야말로 숲은 녹음의 캔버스 위에 소리의 잔치를 무성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그런데 숲에서 나는 온갖 소리들에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니 결국은 하나의 소리였다. 그것은 오직 생명의 소리 하나뿐이었다. <숲은 소리의 사막이다/ 사막이 소리의 분만실이라면,// 사막에는/ 온갖 상처들이 내는 소리들로 가득하다/ 에프엠, 잡소리 섞이지 않고/ 자기 안의 사막이 소리를 낸다// 바람의 날갯소리도/ 모래 마른 강물소리도/ 심지어 사막은/ 제가 토해내는 가슴새소리에도/ 깜~짝~!/ 놀람을 탄생하는 소리분만실이다// 숲에는/ 오로지 한 가지 소리만 산다// 누구는 새들의 방언도 들린다지만/ 또 누구는 벌레들 사투리도 들린다지만/ 또 누구, 누구는 계곡물 옛말도 들린다지만// 내가 든 숲에서는/ 오직/ 생명이 숨 쉬는 소리 말고는, 아뭇소리도/ 들리지 않는/ 숲은 소리의 사막이다.>(졸시「수목원에서」전문)

 인간의 숲[국가사회]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무리 죽음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할지라도,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먼저다. 정쟁의 상대건, 진영논리에 휩싸인 정적이건, 이해타산을 먼저 생각하는 모리배건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는 세상이 사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온갖 생명의 소리로 가득 찬 사막만도 못한 나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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