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하지 않고 살 수 없는 창문
수리하지 않고 살 수 없는 창문
  • 김복현
  • 승인 2014.09.01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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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최대명절인 추석이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으나 극심한 사회변화는 우리에게 ‘시대의 진통’이라는 아픔을 안겨주고 있다. 과거 우리는 일본 식민통치로 큰 고통과 시달림을 당한 후 해방을 맞이하게 되며, 꿈에도 잊지 못할 해방의 기쁨을 채 느끼기도 전에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큰 비극을 겪게 된다. 이 비극으로 인하여 초토화된 나라가 되었지만, 민족의 저력으로 지구상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초고속 개발 국가로 변모하였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치스럽게만 생각되었던 ‘복지 레저’의 시대에 살게 되었다.

  매우 짧은 시간에 이루어낸 우리 민족의 진통과 저력이었다. 그 진통의 중심에서 한평생을 몸담아왔던 올해 구십이 되는 한 노인의 푸념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다문화, 다민족 국가 사회가 되었나?’ 하시면서 지난날의 어려웠던 시절과 젊었을 때 외치던 단일민족의 주장을 떠올린다. 여기에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또 다른 나라처럼 변모해가는 새로운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을 조용히 하신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중대한 변화의 분기점이 되리라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이 노인의 생각처럼 사회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미국의 9.11테러 사건은 사건 전 미국 사회와 사건 후 미국사회가 현저하게 달라졌다고 하며 테러방지책이 강구되어 재발방지가 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처럼 달라진 미국 사회처럼 우리사회도 그렇게 달라지리라고 모두가 공감했지만 현재까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전통사회를 지탱해온 기본질서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기본질서조차 잘 지켜지지 않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교수였던 “제임스 윌슨”이 제창한 ‘깨진 창문의 이론’을 떠올려보자. 깨진 창문을 바로 수리하지 않고 놔두면 나머지 창문들도 깨지게 된다는 이론이다. 깨진 창문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다른 창문도 계속 깨질 수밖에 없다는 순수한 논리이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이미 깨진 창문이 있음에도 수리를 해야 할 전문인들이 수리하지 않고 있음을 국민들이 알고 있다. 그러하다 보니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창문 깨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수리를 해야 할 전문인(정부와 정치권)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형태로 간다면 국민들은 어찌하라는 말인가? 국민들은 깨진 창문을 수리하여야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여기에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원리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 다른 원리가 “국가 개조”라는 것이다. 국가개조는 새로운 가치와 조직 그리고 결과에 만족할 수 있는 곳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깨진 채로 놔두면서 책임전가만 한다면 누가 다시는 창문의 유리가 깨지지 않도록 한단 말인지? 지금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매우 어려운 당면 문제가 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중국의 급부상과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는 우리가 넘어야 할 큰 산이기도 하다.

  여기에 북한은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시도 때도 없이 우리나라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이 어려운 난관을 같이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정치권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국민들이 지금 화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우리사회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원인분석을 하면서 임시방편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알 수 있다. 조직 원리가 있음에도 인사 실패로 인한 국정혼란, 만지작거리는 세월 호 참사 해결 문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병영 폭력 사건 문제, 인명을 경시하는 엽기적인 사건 문제, 허술한 사회 안전망 문제 등 국가와 정치권이 무엇 하나 시원하게 해결한 것이 없이 지나가고 있다.

  따라서 지금 깨진 채 수리하지 않는 이 같은 창문은 국민에게 심각한 불신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아직도 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정치 상실이다. 정치가 상실되다 보니 국민이 믿어야 하는 국회나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이 바닥이라는 여론조사의 의미를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가나 정치에 대한 신뢰 부재는 독재 정치하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테러와 정치조작으로 통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국가에서는 신뢰가 결여된 정치와 국정운영을 한다면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사회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우리 사회문화가 하루빨리 깨진 창문은 수리하여 신뢰성이 넘치는 나라로 거듭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복현<익산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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