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블린 패러독스와 4대강
에블린 패러독스와 4대강
  • 이광재
  • 승인 2014.08.2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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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서남대학교 교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각종 위원회 참석이 많다. 회의 중 대다수가 아니면 조직이나 단체가 원하는 것으로 알고 찬성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누구도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씁쓸했던 적이 있다. 일명 ‘에블린 패러독스’(The Abilene Paradox)에 빠진 것이다.

 ‘에블린 패러독스’란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의 제리 하비 교수의 가족모임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40도가 넘는 폭염에 힘들어하는 가족에게 2시간가량 떨어진 에블린에서 점심을 먹자고 교수의 장인이 제안하자 교수의 아내가 동의하고, 교수는 장모님이 좋다면 자기도 좋다고 한다. 그러자 장모는 모두 좋다니 가겠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아무도 에블린까지 가서 식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분별력 있는 성인 네 사람이 누구도 원하지 않은 애블린에 다녀왔던 것이다.

 회의장에서는 모두가 YES라고 묵시적으로 합의해놓고, 회의장을 나와서는 나는 NO였다고 딴소리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런 역설적 현상의 이유로 ‘조직의 압력’ 또는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어난 집단동조 때문이지 내 책임은 아니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문제 해결과정에서 개개인이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거나 표현을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4대강 논란을 보며 에블린 패러독스는 유교적인 서열문화가 존재하고 상사의 권위와 부하의 눈치?요령이 통하는 한국사회 저변에 상당부분 퍼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4대강 사업은 22조원의 재원이 소요되는 국가사업으로, 예산확보가 여의치않자 정부가 재정지원을 약속하고 K-water(한국수자원공사)는 8조원이라는 거액의 사업비를 부담하였다. 연초 박근혜 대통령도 K-water의 4대강 부채는 우리나라 비정상의 대표적 사례라고 언급한 바 있다.

 4대강사업 계획수립 당시에도 정책입안자들이 많은 회의를 했을 것이다. 개최되는 회의에서 특히 대통령이 주재하는 자리에서 대다수가 Yes를 할 때 대통령의 의지에 맞서 용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되고 사업종료 시점에 와서 K-water의 4대강 부채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부채비율 20% 수준의 아주 재무건전성이 우수했던 K-water는 ‘13년말 부채비율이 121%로 대폭 상승하고 재무구조도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올해 말까지 8조원 부채에 대한 해결방안이 나오지 못한다면 K-water가 부담한 투자비 전액은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손실처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손실처리를 하게 되면 323%로 부채비율이 순식간에 급등하고 신용등급 하락으로 신규차입이 사실상 불가능하여 정상적 경영과 안정적인 물 공급서비스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만약 회수방안도 없는 상태에서 손실처리를 하지 않는다면 이는 분식회계이며 담당자는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 즉, 4대강 부채해결을 위한 정부의 약속 이행이 발등의 불이다.

 필자는 4대강사업을 에블린 패러독스의 사례이자 그 폐해를 실증하는 사례로 본다. 우리는 대부분 근사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꿈꾸면서도 에블린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곤 한다. 에블린 패러독스에 빠지게 되면 원하는 목표달성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조직구성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경제적 손실은 엄청나게 크다. 또한, 그 결정이 실행에 옮겨졌을 때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비난하게 된다. 그 이면에는 자신의 책임보다는 상대의 의견에 무임승차하고 싶어서 생긴 일로 긍정적으로 보면 배려심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무책임한 것이다.

 많은 경영전문가들은 갈등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애블린 패러독스의 논리에 따르면 합의관리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아직도 유교적 전통이 많이 남아있는 우리 사회에 대입한다면 자기주장을 하는 것은 건방지다거나 조직에 충성심이 없다는 이미지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타인들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용기이고, 그런 자유로운 토론분위기가 성숙하여야만 우리 사회가 에블린으로 가려 할 때 제동을 걸어줄 수 있을 것이다.

 4대강사업! 말이 많았다. 아직도 진행형이고 이후는 더욱 복잡해질 양상이다. 이제 K-water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자세로 무대에 올라야하지 않을까?

 이광재<서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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