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과 다시 생각하는 이순신의 리더십
‘명량’ 과 다시 생각하는 이순신의 리더십
  • 나종우
  • 승인 2014.08.2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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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종우 원광대학교 명예교수/전주문화원장
 얼마 전에 공전(空前)의 히트를 치고 있는 ‘명량’을 보고 왔다. 이 분야를 공부한 필자는 이순신과 오늘날의 리더들을 비교해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리더란 어떤 인물을 일컬을 수 있을까. 공식적으로 권위를 가진 사람이 리더는 될 수 있어도 리더십을 갖기는 어렵다. 형식적으로 자리만 차지하는 리더가 다 리더십을 가진 것도 아니고 진정한 리더는 더욱 아니다. 우리는 리더를 잘못 선택하여 파멸하는 국가 및 조직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리고 리더는 그가 속한 조직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순신의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 첫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민본(民本)과 민주를 바탕으로 한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순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우국의 충정은 《난중일기》와 《장계》뿐 아니라, 사사롭게 주고받은 편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순신은 말과 글로써만 나라를 사랑한 것이 아닌, 진정으로 마음과 행동을 일치하여 실천했다는 데에 그 의의가 깊다. 이순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은 다만 국토를 사랑하는 정신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만이 아니다. 임무를 수행하면서 다른 무엇보다도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을 가장 우선으로 했다. 이순신이 해전에 임하면서 백성을 걱정하는 대목을 장계에서 찾을 수 있다.

  1952년 9월 1일 이순신은 부산포해전에서 적선 470여 척을 맞아 128척을 격침했는데, 나머지는 따라 쫓아가 부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왜적들이 육지에서 나오지 않고 싸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여세를 몰아 계속 몰아세운다면 육지로 올라온 왜적들에게 부산성 밖에 있는 백성들이 공격을 받을 것이므로, 적선들에게 한 가닥 활로를 내어주어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하였다.

  당시 전장에서는 외형상의 전과를 중요시해 적의 머리를 베는 것이 전공을 세우는 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전이 끝날 때마다 상황을 보아 적선을 몇 척 남겨 적들이 도주하는 길을 만들어 줌으로써 육지의 백성들이 받는 피해를 최대한 줄이고자 했다. 이순신 장군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은 스스로 안위와 만족을 위해 말로써만 나타낸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을 아끼고 국토를 지키고자 하는 명확한 국가관 아래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둘째로는 이순신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실천하는 정신을 들 수 있다. 충무공은 일생을 통하여 바르고 옳은 일이면 역경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행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이로운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릇되고 잘못된 경우라면 절대로 탐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자신의 정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파면되거나 구속되기도 하는 등, 많은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순신은 자신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결코 요행을 바라거나 옳지 않은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또한, 위선과 허식으로 공명을 다투지도 않았다.

  셋째로는 책임을 완수하는 정신을 들 수 있다. 이순신이 백의종군 중에 통제사로 다시 임명되어 12척의 전선만을 수습하자, 조정에서는 그 전력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수군을 폐하고 육전에 임하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육지에 왜군들이 위세를 자랑하고 국토를 유린하는 이유를, 수군으로서 최초에 적들이 조선에 상륙하는 것을 막아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바다를 지키는 수군의 장수로서 자신의 형세가 불리하거나, 적들의 세력이 약하거나 강하든 간에 반드시 무찔러 바다를 지키고야 말겠다는 결의, 즉 수군이 맡은 책임을 적을 굴복시킴으로써 완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던 것이다.

  넷째로는 창의로 개척하는 정신을 들 수 있다. 충무공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과, 전쟁 중에도 지속적인 전비태세를 유지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가는 면모를 보였다. 영국의 G. A. Ballard가 “이순신 제독이 넬슨보다 나은 점을 가졌으니, 그것은 기계발명에 대한 비상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 기계발명은 곧 거북선과 총통을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후에 임진왜란에서도 뛰어난 성능으로 많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다섯째로는 희생을 감내하는 정신을 들 수 있다. 장수가 먼저 희생을 감수하면 부하들은 용기를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이순신은 자신의 어려움이 부하들의 고통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부하를 사랑하는 참다운 희생정신을 보여주었다. 전장에서도 밤이면 군사들을 휴식시키고, 자신은 화살을 다듬으며 고생스러운 일에는 먼저 나서서 행하였다.

  리더란 체력이 다하고, 가진 것을 다 잃고, 그리고 홀로 남았어도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이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황급히 다시 수군통제사로 임명한 시기는 칠천량 패전 직후이다. 당시 이순신은 “지금 신(臣 )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있사오며, 사력을 다해 싸워 막기만 하면 앞으로도 희망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많은 정치지도자들은 ‘명량’을 보고 이순신의 리더십을 생각해 보기를 기대해 본다.

 나종우<원광대 명예교수/전주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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