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비극
코끼리의 비극
  • 임규정
  • 승인 2014.08.1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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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8일 뉴욕 타임스에 “코끼리가 신경쇠약이라고?(An Elephant Crackup?)”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주요 내용은 코끼리의 행태가 매우 이상하다는 것이었는데, 특히 경악스러운 것은 아프리카의 한 동물 보호 공원에서 코끼리가 코뿔소를 강간하고 죽였다는 대목이었다.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코끼리는 영민하고 평화로운 동물로 알려져 왔다.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 중 하나인 지혜의 신 가네샤의 머리가 코끼리라는 것만 보더라도 코끼리에 대한 그간의 평판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이것이 일시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점이 더 놀랍다.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에서, 코끼리가 대량으로 이상 행동을 보인 것이 한참 되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서점을 지나치다가 『코끼리는 아프다』라는 책을 만났다.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그 기사가 순식간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때의 코끼리들은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저자인 브래드쇼에게도 코끼리가 코뿔소를 강간하고 죽였다는 사실이 매우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저자는 그 사건에 대해 들으면서 코끼리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 외의 충격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알려주는데, 예컨대 네팔에서는 호랑이에 물려 죽는 사람보다 코끼리에 밟혀 죽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사람 17명의 DNA가 뱃속에서 검출된 코끼리도 있었다는 것 등이다. 코끼리는 본디 영민한 동물이라,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고 나름의 언어가 있으며 죽음을 인식하고 동정심도 느낀다. 그런 까닭에 코끼리는 공격받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는 법이 거의 없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상 행동이 왜 나타났는가?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는 마치 난민과 같은 존재다. 살던 땅을 빼앗기고 부모를 잃고, 살아나갈 사회를 잃었다. 무엇보다도 상아 밀렵 때문에 엄청난 수의 코끼리가 도살당했다. 최근의 복원 사업도 폭력적이긴 매한가지라 보호구역 내에 코끼리를 밀어넣고 그 수가 늘어나면 무자비하게 개체수를 조절한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 새끼 코끼리들은 지옥을 경험한다. 어미 코끼리를 죽이고 새끼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어미의 시체에 새끼를 묶어두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중 살아남은 새끼 코끼리들은 지옥에서는 살아남았으되, 코끼리 사회가 이미 사라진 이후라 어떠한 사회성도 기르지 못하고 성장하게 된다. 코끼리들의 이상행동은 코끼리 사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이 암담하고 슬픈 코끼리의 현실을 읽으면 우리 사회가 떠오른다. 최근 뉴스나 신문에서 연일 절망적인 소식들을 보도하는데, 이러한 소식들은 부모로서 정말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끼게 한다. 가해자들을 엄격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로되, 그러나 이러한 처벌이 절망감을 완연히 떨쳐내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이것이 도대체 인간으로서 가능하기는 한 범죄인가라는 반문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들리기 때문이다. 인간성을 상실한 범죄는 우리에게 단순한 분노를 넘어서는 절망감과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또, 이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누군가는 2014년의 목표는 그저 살아남기라고 했다. 그러나 비단 2014년뿐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의 목표가 그저 살아남기였다는 것이 문제다. 급진적인 산업화로 인해 우리는 변화에 허덕이며 적응해왔고, 그 과정에서 변화된 사회에서 인간성을 어떻게 함양할 것인가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한 탓에 많은 젊은이들이 인간다운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 충분히 교육받지 못하고 성장한 것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 마리의 코끼리가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 수십의 어른 코끼리가 필요하듯, 우리의 젊은 세대, 어린 세대를 인간답게 키워내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필요하다.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은 차세대를 키워내기 위해서 우리가 모두 나서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임규정 <군산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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