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읽어주세요.”
“나를 읽어주세요.”
  • 박혜경
  • 승인 2014.08.11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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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이라는 말이 풍년이다. 소통으로 소통을 하기로 하자면 못할 소통이 없겠다.

 벌써 흘러가버린 이야기가 되었지만 지난 청문회 때 온 국민은 어이없는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장관으로 내정된 인물이 적절한지 알아보는 자리에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다”는 말이 오가는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의견이 다르거나 관점이 다른 것이 아니다. 묻는 요점을 제대로 이해하는 자체가 불가능하고 사회의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약속의 단초도 인지하지 못하는 위인으로 보였다. 그런 사람이 여태껏 요직에서 의사 결정권자로서 일처리를 해왔던 것이다.

 본인의 칼럼을 다른 사람이 대신 써줬나요?

 대학원생에게 글쓰기 훈련을 시키는 목적으로 쓰라고 했습니다.

 그는 한없이 답답했다. 왜 나의 깊고 자애로운 뜻을 모르는가. 다그치듯 질문하는 사람들을 향해 원망 어린 목소리로 숨 좀 쉬자 시간을 좀 달라 했다. 온 국민은 귀를 의심했다.

 소통은 사회 통념상 기본적이며 보편적인 약속을 이해하고 이행하는 데서만 가능하다.

 옛 친구가 지금은 쓰지 않는 단어이지만 농아학교교사로 재직할 당시 때 말썽꾸러기 아이에게

 꾸중하는 의미로 선생님이 사랑하지 않을 거야라고 수화로 하니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수화대답이 돌아와서 절망했다는 말이 잊혀 지지 않는다. 사랑해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지금도 뱅뱅 돌며 먹먹하다. 아이는 사랑받으려면 사랑받게 행동하라는 선생님의 요구에 사랑해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응수했던 것이다. 내가 왜 그런지 그 상황을 그 원인을 알아보려 하지 않은 선생님에게 사랑을 바라지 않은 거였다.

 바라는 바가 없으면 소통의 방법 따윈 애당초 무용지물이다. 사랑이 필요 없다가 아니라 나를 알려고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독한 응수였다. “나를 알아주세요.”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여위열기용(女爲悅己者容). 사마천의 사기 자객열전에 나타난 예양의 이야기로 인구에 회자되는 말이다.

 예양은 진나라 사람 지백을 섬겼다. 조양자의 손에 지백이 죽자 예양은 원수를 갚고자 했으나 거듭 실패하고 만다. 조양자는 예양의 충절과 기상을 높이 사 자신의 사람으로 기용하고자 했다. 예양은 거절하고 자결한다. 자신을 알아주었던 지백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조양자의 옷을 베고.

 누구든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더욱 능력을 발휘하고 누구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더욱 잘 보이고 싶은 거다. 남자 여자 굳이 가를 것 없다. 지백은 예양을 귀하게 알아주었던 것이다.

 이야기가 엇갔지만 서로 알아주어야만 비로소 소통이 시작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값싼 칭찬 값싼 위로 값싼 인사치레는 하는 사람도 알고 받는 사람도 안다. 기심 없이 밝은 곳으로 나와 심중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소통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마음이 싹터야만 소통할 수 있다. 서로 귀하게 여겨야만 소통할 수 있다. 나를 업신여기는 사람과는 소통 못한다는 말이다. “나를 귀하여 여겨주세요.”

 하나 더 덧붙이자면 소통은 조율이다. 내 것을 내어 줄 요량 없이는 소통은 불가하다. 보리를 주고 외를 받든가 외를 주고 보리를 받든가 누군가는 먼저 내밀어야 한다. 내어줄 요량을 보이면 상대방은 물러설 명분을 갖는다. 때로는 말이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그 실마리를 잡아 술술 풀어내는 것은 정이나 듣는 것이다. 듣는 것이야말로 조율의 시작인 것이다.

 조물주께서 듣는 걸 중히 여기시고 사람에게 입은 하나 귀는 둘로 지으셨다 한다. 눈도 감으면 보기 싫은 것을 피할 수 있고 입도 닫으면 하고픈 말을 못하지만, 귀는 막아도 들린다. 임종의 순간 마지막 감각으로 청각이 남는다 하니 세상 떠날 때 수행해야 할 마지막 임무는 원해도 원치 않아도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내 말 좀 들어주세요.”

 상대방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의사가 없고 듣지 않고 내어줄 생각이 없는 사람이나 집단끼리 소통이라는 말을 맨 앞에 세우는 것은 소통이 매우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통은 제발 내 말 좀 들어주세요 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 된다. 내가 생각하는 소통은 평등도 공평도 아니고 알아주고 들어주고 내어주면서 조율해 가는 것이다.

 소통은 통합이 아니다. 각기 다른 것들의 어울림이다.

 박혜경<전주 서신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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