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받을래요? 뺏을래요?
문화! 받을래요? 뺏을래요?
  • 박재천
  • 승인 2014.08.05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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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말, 미국 재즈의 거장인 와다다 레오 스미스(Wadada leo smith, 트럼펫, 1941~)와 미국 투어를 마치고 한국 공연 당시의 일이다. 레오 스미스는 미국 재즈의 1960년대 사조인 프리재즈운동을 시작한 미국의 유명 재즈혁명단체 AACM(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reative Musicians)의 창시자로 전위적 재즈의 선봉이다. 그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그와 한국 투어 공연을 할 당시 한국의 많은 관객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 한국 프리재즈 공연 역사상 최대 관객이 몰린 것도 1998년 정동극장에서의 인파일 것이다.

 한국의 어느 한 공연장에서 그와 연주를 마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었다. 전위적 재즈에 경험이 없던 한국의 음악 관객들은 ‘이 음악을 어떻게 이해를 하느냐’, ‘이것이 파괴현상이지 과연 음악이냐?’ 식의 부정적인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질문을 한참 듣고 있던 레오 스미스는 질문자들에게 대답했다. ‘제가 새로운 문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당신들은 새로운 문화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말이다. 그의 대답에 나는 무척 부끄러워졌다.

 해외 투어를 다니며 가장 놀랐던 점 중 하나는 그들이 무심코 던진 진담 섞인 농담이다. ‘CD 10,000장 정도를 듣지 않고선 음악에 대해 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의 음악 관련 종사자들과 전문 분야의 음악을 즐기는 음악팬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얼마나 많은 음악을 듣고 있는지, 또 보유한 음반의 수는 몇 장이나 되는지 말이다. 아마 200장에서 300장 정도는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그것도 한 장르의 음악이 아닌 다양한 장르의 음반일 것이다. 이 정도에서 출발하는 음악팬, 너무 미흡하지 않은가. 그나마도 한국은 복제가 쉬워 듣고 싶은 음악도 복사해서 듣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BGM으로 가득 찬 환경에서 살고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원하면 언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사람들은 음악을 많이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곡은 어디서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어’라며 스스로 만족해한다. 음악적인 풍성함을 가장한 환경 때문에 진정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것을 등한시하게 된다. 음반을 구입한다든지 차분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현재의 음악은 개인의 안락을 위한 수단이거나 감정적인 대리만족을 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더불어 수많은 공연의 초대권 남발과 행사성 축제에서의 무료공연에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문화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세력들에 의해 실험의 과정을 거쳐 진보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올바른 음악을 소비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고 대중들을 이끌어 가야 하는 창작인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쉴 새 없이 만들어지는 음악을 소비의 수단으로 전락시킨 현 세태의 간극을 좁히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하물며 이 와중에 50분의 긴 산조를 듣겠다든지 세 시간이 넘는 완창 판소리를 감상하겠다는 이야기, 또는 알지 못하는 먼 나라의 낯선 연주가의 음악을 축제 프로그램으로 장착시키려는 이야기들은 용어 자체에서부터 중압감을 느끼게 한다.

 한두 개의 선택된 판소리 몇 대목을 듣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BGM으로 들리는 경음악으로 충분하다는 세상이다. 그래도 필요한 것들은 꼭 무대에 올리겠다고 ‘우겨대는’ 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우린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소외감을 종종 느끼곤 한다. 이들을 축제현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여타 장르의 음악을 골고루 배치해야 하는 고통이 있다. 문화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이들의 노력과 수고만큼 문화를 향유하는 층의 노력과 수고도 동일하게 필요하다.

 끝으로 한 이야기를 전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소련이 해체된 후 러시아 공연을 가게 됐을 때의 일이다. 한 갤러리에서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그림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조용하고 질서 있는 가운데 끊임없이 토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청해준 프로듀서에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냐고 물어보니 그가 대답하길, 저들은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아이들이 아니며 먼 곳에서부터 이 갤러리를 직접 방문하기 위해 6개월 전부터 미리 학습하고 현장 체험을 왔다는 것이다. 미리 배운 그 이야기들을 선생님과 함께 열띤 토론을 하며 풀어놓는 중이라는 것이다.

 올해로 13회를 맞은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수많은 음악과 공연으로 축제를 장식했다. 앞장서 문화를 만들어가는 대한민국 최고의 축제의 장에서 당신이 누릴 수 있는 ‘문화’를 마음껏 빼앗아가길 바란다.

 박재천<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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