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과 실천의 가르침
칭찬과 실천의 가르침
  • 이용숙
  • 승인 2014.07.31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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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복 더위에 심신이 몹시 지쳐 있다. 중복과 말복사이 7월 고열의 고비가 힘겹다. 장마가 물러간 더위만큼이나 세상살이가 팍팍하다. 지구촌 곳곳이 살육과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고, 나라 안팎이 모두 뒤숭숭하다. 이런 때일수록 맑고 시원한 희망의 메시지가 간절하다. 누구인가에게 칭찬 한 마디 듣고 싶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공부에 별 흥미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선친의 가르침대로 재래식 서당에서의 한문공부에만 몰입했고 「명심보감」이나 「소학」구절만 암송하고 다녔다. 그랬는데 4학년 수학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선생님께서 분수의 계산문제를 풀면서 지도하고 있었는데, 간단한 공식을 접어두고 복잡하게 설명하였다. 한번도 손을 들고 질문해 본 적이 없던 내가 문제를 제기하니, 칠판 앞에 나와 풀어 보라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가까스로 풀고 나니 선생님 왈, “야, 너는 선생님도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 극찬이었다. 하늘(?) 같은 선생님, 그런 어른도 모르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니, 그 날 이후 복습과 예습에 매진, 선생님도 모르시는 답을 더 알아내고 더 칭찬을 받으려고 매달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 칭찬 한 마디의 힘

한번은 선생님께서 가정방문 오셨을 때의 일이다. 연배가 비슷한 큰형님과 말씀을 나누시는데, 얼핏 무슨 칭찬을 들은 성싶다.

“저 아이는 ‘기역니은’이 매우 좋아요. 잘 지도해 주십시오.” 세상에 기역니은이 무엇일까?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칭찬인 것만은 틀림 없으렸다. 어깨가 으쓱하여 영문도 모르고 자랑했더니, 훈장님께서 파안대소하며 그건 아마 ‘기억력’이 좋다는 뜻일 거라 하셨다.

그 시절의 칭찬 한 마디가 내 삶에 큰 획을 그은 듯했다. 43년이 넘은 교단생활 내내 그 교훈을 잊지 않았다. 늘 칭찬하자.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자. 한때는 몽둥이로 거칠게 다루기도 했지만, 그런 매보다는 칭찬과 격려가 훨씬 값진 성과로 맺어짐을 결과로 확인하고 있다.

엊그제 운전 중 라디오에서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주제가 ‘가장 듣고 싶은 말 한 마디’였다. 대구에서 고로케, 무슨 빵인가를 만들어 파는 어느 청년의 사연이다. 고객 중에 귀여운 유치원 꼬마 아가씨가 있는데, 언제나 맛나게 오물거리며 먹고 인사를 한단다. “나는 요, 아저씨가 만들어 주신 고로케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이 얼마나 신나는 말 한 마디인가.

○ 몸으로 가르쳐라

「탈무드」의 가르침 중에 ‘입으로 말고 몸으로 가르쳐라’는 구절이 있다. 입으로 가르칠 때는 시끄럽고 반항하는데, 몸으로 보여줄 때 잘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필자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 엄마와 약속한 것이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공부하라!”는 채근을 하지 않기로. 구지 공부를 하지 않는다 싶으면 우리가 먼저 책을 펴자고. 그렇게 하여 탈 없이 잘 길렀다.

87년 7월, 그 때가 언제인가. 저 ‘6월항쟁’으로 호헌 철폐 ? 독제 타도 ? 직선 쟁취를 이룩한 그 무렵이다. 6?29의 항복(?)으로 정치적 승리를 쟁취한 대학가에 학원 민주화 바람이 거칠게 몰아치던 때, 날마다 대자보가 붙고 학내 소요로 강의 진행이 어려웠다. 강의실마다 낙서 ? 쓰레기 ? 담배꽁초 ?책상은 엉망이고 교단에 몸담고 있는 자신이 무기력하고 부끄러웠다. 도저히 수업진행이 어려운 강의실, 아무 말도 없이 쉬는 시간 10분을 교실 청소에 쏟았다. 낙서를 지우고 쓰레기를 치우고 책걸상 정돈 그렇게 버텼다. 아 학생은 믿음직했고 역시 참한 존재들이었다. 그러기를 한 주일도 지나지 않아 스스로 알아서 정리 정돈 그리고 강의에 임하였다.

교단의 마지막은 교육대학에서 지냈다. 저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가, 평생 교단을 가꾸어나갈 예비교사들이니, 20년 넘게 당부해온 한 마디가 있다. 입으로 가르치지 말고 몸으로 가르치라고.

천지 우주 자연에는 진리의 기운이 있다. 내가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지껄이면 우주의 기운이 통하지 않는 법, 감동이 없다. 가령 학생에게 독서가 중요하다면, 아이들에게 그냥 책을 읽으라고 말하지 말고 교사도 함께 읽어라. 만약 선생님이 일기를 쓰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일기를 쓰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먼저 반드시 실천궁행하라.

부처님 가르침에도 ‘뜻으로 읽지 말고 몸으로 읽어라’는 말씀이 있다. 아무리 좋은 말도 실행하지 않으면 하룻밤 꿈에 불과하다. 백 가지 뜻을 아는 사람보다 한 가지를 실천하는 사람이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이용숙 <전주문화재단이사장·시인·전주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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