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장편소설 ‘도가니’
공지영 장편소설 ‘도가니’
  • 김효정
  • 승인 2014.07.2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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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관람 18.

 얼마 전 ‘전주판 도가니’ 사건으로 불리는 ‘전주 자림원 사건’ 피고인들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 여성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던 시설 원장과 국장은 이 날 반성은 커녕 마지막까지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장애인들 중 특히 지적장애인들은 사리분별력이 없고 의사 표시 능력도 부족해 높은 수준의 보호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이다. 지난 7월 4일은 올해로 열 번째를 맞는 지적 장애인의 날이었다. 그러나 강산이 변하고도 남았을 그 시간 동안 달라진 것은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 약 17만 명의 지적장애인이 살고 있지만 대부분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으며 남성은 노동력 착취, 여성은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여전히 세상은 그들을 외면하고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지만 그 누구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자림원 피해 여성들도 지적장애 2~3급으로 성폭행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었지만 신고할 엄두조차 못냈다. 그런데 적반하장. 가해자들이 억울하단다. 무엇이 그리 억울할까. 설마 들켜 버려서? 인면수심이다.

 이처럼 장애인 여성들의 성폭력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기폭제가 된 작품이 바로 공지영의 <도가니> 로 광주의 한 장애인 학교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작가는 어떤 신문 기사의 한 줄에서부터 이 소설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것은 마지막 선고공판이 있던 날의 법정 풍경을 그린 젊은 인턴기자의 스케치기사였다. 그 마지막 구절은 아마도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였던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의 비명소리를 들은 듯했고 가시에 찔린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준비해오던 다른 소설을 더 써나갈 수가 없었다. 그 한 줄의 글이 내 생의 1년, 혹은 그 이상을 그때 이미 점령했던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그 울부짖음이 나의 귀에도 생생하게 들리는듯하다. 그동안 귀를 막고 외면했던 그 소리들이 들리는 순간, 아니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소설 속 이야기는 더 이상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안개가 자욱한 도시 무진. 그곳의 청각장애인 학교 ‘자애학원’에 기간제교사로 내려가게 된 강인호는 장애아들에 대한 구타와 성폭행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학교의 추악한 모습을 목격하고 그 실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그 일은 녹록치 않다. 경찰과 교육청, 시청 등 무진의 기득권 세력들은 사건을 무마하기에만 급급하고 그들에게 책임과 의무, 양심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2011년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사회적 파장은 매우 컸다. 그냥 묻힐 뻔 했던 광주인화학교의 장애인 성폭행 사건의 진실이 세상에 드러났고, 장애인 인권유린과 가해자들의 솜방망이 처벌에 국민들은 공분했다. 그러나 그날의 공분은 언제나처럼 사그러 들어 버렸고, 그 자리에는 피해자들의 상처만 아물지 않은 채 남아있다.

 영화 개봉 당시, 지자체장과 자림원을 비롯한 도내 장애인시설장들이 함께 이 영화를 관람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들도 그 때 이 자리에 있었을까? 만약 영화를 보았다면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앉아 있었을까. 이들은 “검사와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공모해 허위로 조작한 사건”이라며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주 항소장을 제출했다고 한다. 불편한 진실 앞에 책이나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분노와 경악, 슬픔이 어우러진 감정의 도가니 속에서 허우적대고 싶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진실을 묻으려는 자들에게 그것이 가장 무서운 무기이기 때문이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효정<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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