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장마
  • 진동규
  • 승인 2014.07.2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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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몇 주 심어 놓았더니 일이 많다. 신경을 써야 할 무엇이 그리도 많은가. 함께 살아간다는 거기서부터 이어지는 관계가 쉬운 것이 아니다.

 칠점박이무당벌레가 나를 찾아왔다. 항상 조용하고 겸손한 녀석인데 무슨 일이 있어 나를 찾아왔을까. 겸손의 경지에까지 이르렀으면 그 내공을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제 투명한 날개를 내색 없이 숨기고 사는 것만 보아도 그 깔끔함이 느껴진다.

 개미가 싸움을 걸어온다는 것이었다. 가지 끝의 새순에 기대고 사는 진딧물에게서 개미는 기막힌 명약을 얻는 모양인데 점박이는 그것을 먹이로 삼지 않는가. 진딧물이 좀 심하다는 생각을 한 일이 있었다.

 여름의 매미처럼 나무에 기대 살면서 나무를 아프게는 하지 않아야지 진딧물이 나무를 죽게까지도 한다. 진딧물을 개미가 관리하는데 이빨도 없고 독침도 없는 점박이를 얼씬도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서야겠다 싶었다. 내가 쓰는 모기약 에프킬라가 있다.

 대란이 일어났다. 이놈들이 어디에 숨어 있었다는 말인가. 갈퀴발을 저으면서 사마귀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를 흔들면서 동아줄을 늘이고 탈출하는 놈을 보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꾸지뽕 누에였다. 보호색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니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었다.

 심각한 일이다. 지난봄에 입주시킨 꾸지뽕나무, 기세도 좋게 쭉쭉 뻗쳐 나가 가지가 잘도 자라는구나 생각했다. 이럴 수가 있나. 나뭇잎 뒤로 잎자루에는 잎자루와 구별이 잘 안 되는 놈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에프킬라 날벼락에 대이동이 시작된 것이었다. 동아줄을 늘이고 탈출을 시도했던 놈은 다시 줄을 거둬들이며 오르고 있었다. 저놈들이 고치를 지으면 황금비단을 짜내는 황금고치를 지을까. 뽕잎을 먹는 누에처럼 동아줄을 늘일 줄 아는 저놈 뽕잎보다 단단한 꾸지뽕을 먹고 자라는 놈이니까 튼실한 고치를 지을 것 아닌가.

 이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황금고치를 생각하기에는 한두 마리도 아닌 저놈들을 앞에 놓고 불가불 모기향을 살포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벌 한 마리가 나타났다. 꿀벌보다는 몸매가 날씬한 곳이 민첩하게 보였다. 동아줄을 다 걷어 들이고 잎자루에 오르려는 꾸지뽕 누에를 발견한 것이었다. 이건 싸움이 아니다. 사냥꾼의 노련한 솜씨였다. 기간이 많을 필요도 없었다. 급소를 찾아 비수를 깊이 박았을 터이다. 제 몸체보다 누에를 보듬어 안고 가볍게 날아 올라버린 것이다.

 내가 개입할 일이 아니었다. 어떤 신이 있어 개입할 일도 아니었다. 뽕잎을 갉아먹는 벌레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조금 전에 날아갔던 벌이 다시 날아왔다. 그냥 일어서기로 했다.

 장마, 장마라고 하는데 내가 장마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건가. 가뭄이 너무 길었던 탓이리라. 이틀거리 하루거리 비가 내리긴 했다.

 눈이 번쩍 띄었다. ‘이게 장마라는 거야.’ 장마는 장마였다. 장마는 이렇게 해서 제 역할을 하는구나 싶었다. 지난봄 새로 심은 나무들 중에 딴에는 특별한 몇 그루를 심은 것이었다. 종아리만큼씩 한 십수 년 수령의 나무를 심은 것이다. 그놈들이 늘일 그늘을 기다리며.

 생각해서 십 미터 남짓씩 바람 지날 거리를 생각하면서 심었다. 나무 전문가인 임협조합 고창 상무께서는 나무 심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살까 싶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놈들이 지금 맹렬하게 기운을 뻗치고 있어서 나무마다 퇴비 한 포씩을 다 부어 주지 않았던가. 애를 태운 것은 그놈들 중에 가장 몸체가 컸던 녀석이 지금까지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를 못했다.

 게으른 장마의 역할, 동의보감을 읽지 않았지만, 허준 선생께서 이 말을 남기셨을 것이다. 끝내 회생이 어려운 나무는 게으른 장마가 구해낸다고, 열일곱여덟 무렵 내 아이의 볼에 돋는 여드름이 이보다 예뻤을까.

 진동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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