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야 할 것과 지워서는 안 되는 것
지워야 할 것과 지워서는 안 되는 것
  • 나종우
  • 승인 2014.07.17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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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다보면 개인이든 국가든 영광의 기억도 있지만 쓰라린 기억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영광에 대한 것은 이런 저런 기억될 만한 것들을 만들어서 오랫동안 자랑스럽게 기억하려고 한다. 그러나 쓰라린 기억은 가능하면 꺼내어 말하지 않고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공통의 심정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는 수없이 많은 외침을 받아왔고 따라서 영광의 기억보다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역사 속에서 더 많이 일어났다. 특히 근세에 들어와 일제의 식민지 지배는 오늘날 까지도 그 상흔(傷痕)이 남아서 쉽게 지워지질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소위 일제의 잔재를 지우려는 노력이 그동안 꾸준히 계속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김영삼 정부의 ‘민족정기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1995년 8월15일 광복절을 맞이해 조선총독부 건물이 폭파해체되면서 부터라고 할 수도 있다. 철거 당시 보존이냐. 철거냐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민족자존심복원’이라는 것과 아픈 역사 현장의 ‘수난문화재’로써 남겨두었어야 했다는 논란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말들이 오고 가기도 한다.

 여기에서 지워야 할 것과 지워서는 안 되는 한 가지를 짚어 보고자 한다. 전주초등학교 안에는 독립기념비가 세워져있었는데 일제의 잔재위에 세워진 것이라 하여 이 비의 기단을 해체하여 그 자리는 화단으로 만들고, 비는 옆에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1945년 8월에 해방이 되고 이비는 세 달이 지난 그해 11월15일에 세워졌으니 필자가 알기로는 해방이후 최초로 세워진 독립기념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1897년에 세워진 전주초등학교는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초등학교다. 지금의 자리로 이전 된 것은 1914년 경이다. 일제는 이 학교안에 요배소(遙拜所)라는 곳을 설치하였다. 요배라고 하는 말은 멀리서 바라보고 절을 한다는 뜻이니, 요배소는 멀리서 바라보고 절을 하는 어느 구역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요배소 지역에는 아래 부분은 자연석으로 경관을 조성하고 그 위에 돌로 몇 단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는 조그만 집 형태를 갖추어 이 집을 봉안전(奉安殿)이라 했다. 그리고 봉안전 속에는 일본 천황의 사진을 걸어 놓고 학생들이 등교 할 때 교문을 들어서면 먼저 이곳을 향하여 경례를 하고 등교를 하게 했던 것이다. 우리민족의 어린 새싹들부터 철저하게 세뇌시켜 일본 식민지 국가의 노예로 만들려는 작태(作態)였던 것이다. 해방이 되자 기단위의 천황의 사진이 있던 봉안전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해방의 기쁨을 담아 독립기념비를 세웠던 것이다. 그것도 전국에서 최초로.

 그런데 이 기념비 아래 기단의 석재들을 일재의 잔재라하여 치워버리고 화단을 조성하고 그 비는 방치되어있으니 참으로 많이 생각 해 볼일이다. 무엇을 지우겠다는 것인지.

 얼마 전 우연히 이러한 사실을 가슴아파하는 문화원 식구가 1922년도 전주초등학교 졸업앨범을 구하게 되었다. 그 앨범에는 당시의 요배소와 봉안전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지금이라도 원위치에 독립기념비를 복원시켜서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시켜야 된다고 본다. 복원하고 당시의 사진과 내용을 자세히 설명한 설명문을 세워서 그것을 읽는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나라를 잃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를 알려주어야 한다. 적어도 이런 기념물을 변형시킬 때는 그 역사와 가치를 전문가들에게 물어서 처리했어야 된다고 본다. 모든 것을 눈에 보이지 않게 한다고 그것이 잔재를 지우는 것이라는 생각은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에는 마사다(masada) 유적이 남아있다. A?D77년에 유대가 로마에 의해 마사다 전투에서 완전 패망하고 지도상에 이스라엘은 흔적도 남지 않게 된 가슴 아픈 패한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 마사다는 오늘날 유대민족의 용기의 상징이 되었으며, 이스라엘 청년단체들은 이 가파른 산을 오르는 연례행사를 갖는다.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에서 손꼽히는 관광지가 되었다. 타이완의 경우는 조선총독부처럼 1912년에 일제에 의해 대만총독부가 세워졌는데 1945년 폭격에 의해 상당부분 훼손되었지만 1947년에 복원하여 현재는 총통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날일(日) 자로 지어진 건물 정원의 잔디밭에는 꽃과 나무를 심어 하늘에서 보면 타이완의 국기인 청천백일기처럼 보이게 하였다. 식민지 시대의 수탈의 역사를 재치 있게 극복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워야 할 것과 지워서는 안 될 것을 구분 할 수 있는 역사의식이 있어야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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