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안일(無事安逸)에 빠진 대한민국
무사안일(無事安逸)에 빠진 대한민국
  • 전정희
  • 승인 2014.07.0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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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 이후 약속이나 한 듯이 대통령부터 시작해 모두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통일된 의견이 없다. 정치권과 정부는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국가개조론, 관피아 척결, 국가안전처 신설 등 실천력 없는 대책만 쏟아내고 있다. 대형 재난이 왜 매번 반복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이뤄지지 않은 채 말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페로는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이후 연방정부의 지시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대형사고에 대해 연구했다. 1984년 정상사고(Normal Accidents)라는 제목으로 영문판 초판이 나온 뒤, 1999년 개정판이 나왔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 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세월호 참사와 같은 고위험 사고를 미리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로는 원자력발전소, 화학공장, 항공기, 선박, 댐, 전력망, 유전자조작 등 인간이 만든 복잡한 시스템은 참사의 위험을 늘 안고 있다고 말한다. OECD 회원국가의 대부분은 이런 복잡한 시스템이 가동되는 고위험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고위험 산업이 유발하는 대형 재난은 피해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까지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3차례 원전사고는 현재는 몰론 미래세대의 삶까지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사고, 1993년 서해페리호 침몰 사고,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2011년 9.15 광역순환단전 사고, 2012년 경북 구미산단 불산누출 사고 등 모두가 대규모 인명피해를 낳은 고위험 사고였다. 이런 대형 재난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사고원인조사가 없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사고원인을 찾아 개선하지 못한 채 책임자만 문책하는 식이었다.

 특히 중소 화학공장이 밀집해있는 산업단지에는 하루에도 크고 작은 사고가 수십 건씩 발생한다. 사고 위험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산업단지는 근로자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경제성장만이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

 2012년 9월 경북 구미산단에서 불산 20톤을 적재한 탱크로리에서 공장 저장탱크로 불산을 옮기던 중 8톤 가량의 불산이 솟구쳐 근로자 5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당시 근로자들은 불산노출에 대비한 아무런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않았고, 불산을 중화시킬 소석회도 없는 상황에서 바람을 타고 확산되는 불산은 인근 주민들까지 위협하는 지경에 처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산업안전의 현주소이다.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이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다 줄 수 있는가를 모든 원전사고는 복잡한 설비와 시스템의 고장 및 관리부실,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고위험 사고였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중 폭발한 원전 4기는 모두 설계수명 30년을 넘긴 노후원전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30년을 훨씬 넘겨 2017년이면 40년이 되어가는 고리1호기의 수명을 또다시 연장하려고 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방사능 피해가 커진 결정적인 원인은 사용후 핵연료를 저장하고 있는 수조가 폭발한 것이다. 사용 중에 있는 핵연료보다 사용후 핵연료에는 방사선 위험물질이 훨씬 많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현재 4개 원전부지 내에 사용후핵연료를 임시저장하고 있지만, 70%가 채워져 10년 뒤에는 쌓아둘 곳이 없어진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폐로 대안도 없고, 예산도 전혀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수원은 “우리나라 원전은 안전하다. 지금까지 사고율 제로였다”며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찰스 페로는 “원전, 전력망, 선박, 항공 등 복잡한 설비나 시스템에 의존하는 고위험 산업이 발전할수록 재앙의 규모는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면서 “고위험 사고를 예방하는 길은 안전에 대한 투자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대형 참사가 벌어진 뒤 사후약방문격으로 요란스런 대책을 내놓는 일은 이제 멈춰야 한다. 대형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찰스 페로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전정희 /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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