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의 두 얼굴
의리의 두 얼굴
  • 임규정
  • 승인 2014.07.0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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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실패는 그것이 어떠한 상황에서 일어났느냐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데, 때로는 너는 최선을 다했으니 이것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위로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그 실패가 너무도 아쉬워 억울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의 실패에 대한 지배적인 반응은 실망감이다. 일명 “홍명보의 아이들”로 불리는 축구 국가대표팀의 최종 엔트리가 발표되었을 때부터 이미 월드컵 성적이 좋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예견했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것은 홍명보 감독 특유의 인사법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애초에 홍명보 감독은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뽑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이 원칙에 위배되는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며 자신의 원칙을 스스로 깼다. 게다가 박주영 선수에 관련된 논란은 또 어쩔 것인가?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이 군대에 가지 않으면 본인이 대신 가겠다고 기자회견을 할 정도로 박주영 선수를 아꼈으나, 이번 월드컵은 감독의 선수 선발 및 기용의 기준이 선수의 실력이 아니라 그저 “홍명보의 아이들”이냐 아니냐라는 의혹을 깊게 할 뿐이다. 이 대표팀의 정체성은 이른바 의리축구라고 일컬어진다.

축구대표팀은 의리축구라는 의혹을 불러일으켜서, 그리고 의리축구라는 의혹을 받기 때문에 비난받고 있다. 사태를 합리적으로 파악하고 대응하지 못하고, 감정에 휘말려 자신의 의리만을 좇았기 때문에 발생한 참패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놀라운 것은 2014년 상반기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이 의리라는 점이다. 의리는 어느 순간 한국 사회의 모종의 필요와 맞물려 급작스럽게 큰 인기를 얻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의리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에 의리를 추구하는 것에 선망을 느끼는 것이라고 이 사태를 전망한다. 실제로 거의 모든 사태에 의리를 넣어서 재해석하는 것이 한동안 인기를 끌었고, 의리를 내세운 광고를 제작한 모 음료는 한때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로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의리에 대한 우리의 상반된 반응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의리는 기본적으로 내 편 챙기기이다. 실력 등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증거보다 그가 나의 사람인지의 여부가 결론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의리이다. 그렇기에 의리는 같은 편에게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된다. 지난 몇십 년 동안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발전 과정에서 우리는 합리적인 시민 의식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컨대, 학연, 지연, 혈연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실력이야말로 어떤 자리에 그가 어울리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더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들이 그러한 시민 의식을 잘 갖추고 있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또 맹렬히 비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스스로가 그 정도로 시민 의식을 잘 갖추었는가에 대해서는 돌아보지 않는다. 이 이중적인 태도가 나에게 향하는 의리는 즐거워하고 환영하며, 심지어 그리워하도록 만들면서, 남들끼리의 의리는 비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2014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의리축구는 우리의 자화상인 셈이다. 월드컵에 출정하기 이전 홍명보 감독은 “모든 건 결과로 말하겠다”는 말로 국가대표 선발에 대한 의혹에 대한 답변을 대신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표한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경우에 비합리적인 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결과에 기대왔던가? 그리고 그러한 태도가 얼마나 안타까운 참사들을 불렀던가? 비합리적인 과정을 거쳐서는 진실로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에 불과하다. 설령 그 결과가 좋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를 해치는 치명적인 마약에 불과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 16강 좌절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임규정 <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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