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
  • 김효정
  • 승인 2014.06.30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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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관람 15.

 엊그제 뉴스에 2100년도쯤에는 남극의 황제펭귄이 멸종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란다. 미국의 우즈 홀 해양 연구소팀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남극 주변의 해빙량이 감소하면서 황제펭귄의 개체 수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한다.

 지구온난화 문제는 비단 황제펭귄에게만 위협적인 문제는 아니다. 문명의 이기로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으며 수많은 동식물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간이 있다.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는 교만과 어리석음의 극치다.

 칠레를 대표하는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 그는 이러한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그의 첫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제목만큼 로맨틱 하지 않다. 연애소설을 좋아하는 노인의 한가롭고 여유로운 이야기가 아닌 자연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파괴적인 인간들에 대한 경고장이기도 하다.

 아마존 부근 엘 이딜리오에 살고 있는 노인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의 꿈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애 소설을 읽으며 여생을 평화롭게 보내고 싶은 것. 하지만 노다지를 찾아 모여든 ‘양키’들은 정글을 들쑤시고 다니면서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까지도 빼앗는다.

 마을에서 가장 정글을 잘 아는 노인이 원하는 것은 오직 오두막에서 조용히 머나먼 곳에서 일어나는 달콤한 연애담을 탐독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소망은 정글의 맹수를 화나게 한 ‘바깥인간들’에 의해 방해를 받고 이를 보다 못한 노인은 자연을 위협하는 자들에 대한 응징과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홀로 총을 메고 정글로 들어간다.

 단순히 ‘자연보호’를 강조하는 계몽적인 내용이 아닌 정글이라는 오묘한 매력의 자연을 배경삼아 추리적 기법을 통해 긴장감이 보태지면서 이야기는 점점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원주민의 초상화를 기념품삼아 가져가려는 인간들, 새끼 살쾡이를 죽여 아무렇지도 않게 껍질을 벗기고 태연스럽게 자연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인간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자연에 순응하며 삶의 터전을 바꿔가면서까지 자연이 회복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수아르족의 모습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사실 루이스 세풀베다는 이 책을 쓰기 전 아마존에서 원주민과 함께 생활했던 경험이 있었으나 10년 동안 그 시기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글로 인해 아마존에 대한 환상을 불러 일으켜 그곳이 훼손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가 살해당한 후 그는 이 소설의 집필을 시작했고, 그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친다.

 이 작품은 1989년 티그레 후안상 수상과 함께 이후로도 꾸준히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스테디셀러의 대열에 올랐으며 2001년에는 영화화 되었다. 한국판 제목이 <아마존 대탐험> 이라니 이처럼 원작의 명성과 감동을 깎아내리는 어처구니없는 제목이 있을까 싶어 실소를 자아내지만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 옛날 사계절이 아름다웠던 대한민국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다. 봄과 가을의 수명은 짧아져 가고, 여름답지 않은 여름, 겨울답지 않은 겨울은 우리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자연과 기후의 변화는 이미 우리에게 수차례 위험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만 인간들은 꿈쩍하지 않는 당돌함으로 여전히 오만하다.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무참히 쓰러져 가고 있는 자연을 훼손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있지 않다. 그러한 이기심은 부메랑이 되어 오롯이 다시 돌아올 것임은 자명하다. 한가롭게 연애소설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자연이 보내는 경고를 결코 가볍게 흘려 보내서는 안될 것이다.

 김효정<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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