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안’과 도덕방정식
‘파비안’과 도덕방정식
  • 김진
  • 승인 2014.06.2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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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 1차 대전 이후에 극심한 경제침체 속에 빠져 있던 독일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 있다. 당시 독일사회와 사람들은 상식을 잊어버리고, 우울하고 어두운 기운 속에 빠져 있었다. 이때 ‘케스트너’는 ‘파비안’이라는 소설을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가?’ 그리고 ‘사회와 지구촌 사람으로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에 대한 많은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여기에 옮기는 것은 글의 한 대목에 불과한 주인공 파비안과 어머니 사이의 이야기다.
 
 시장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논리
 
 고향을 떠나 낯선 외지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파비안의 집에 어머니가 방문한다. 어머니는 객지에서 고생하는 아들에게 말한다.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날마다 만들어 줄 테니 힘들면 언제든 집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큰 사랑과 연민을 느낀 파비안은 기차역까지 배웅하며, 어머니 몰래 지갑에 20마르크의 여비를 넣어 드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파비안의 책상 위에는 꽃이 꽂혀 있었고, 옆에는 봉투가 놓여 있었다. 봉투 안에는 20마르크와 함께 ‘적은 돈이지만 엄마의 사랑과 마음을 담아’라고 적힌 편지가 있었다. 그때쯤 어머니도 기차에서 아들이 지갑에 몰래 넣어준 20마르크의 지폐를 발견한다.

이 내용은 오랜 시간이 지난 소설의 한 대목이지만, 자본주의에 절어 있는 현대인들이 생각해봐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자본의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시장이 가진 도덕적 한계를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산술적으로 보면 이 교환의 결과는 0이다. 서로 20마르크씩을 주고받았으니 숫자에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선행은 그러한 숫자적 계산과는 다르다. 도덕방정식은 산술방정식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사랑의 배터리’ 같은 방정식

 모자간에 오고 간 도덕방정식을 보면 아들은 어머니를 위해 20마르크를 썼지만, 다시 20마르크가 생겼다. 결국, 40마르크의 재화적가치가 생긴 셈이다. 이는 어머니 역시도 마찬가지다. 결국, 둘 사이의 계산을 합치면 80마르크의 가치가 생겨난 것이다. 이처럼 시장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행동을 ‘도덕방정식’ 또는 ‘사랑방정식’이라 칭한다. 이는 마치 ‘사랑의 배터리’라는 유행가 가사를 연상케 한다. <나를 사랑으로 채워줘요 사랑의 배터리가 다 됐나 봐요>. 누구나 살다보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다. 술값은 있지만, 같이 마실 친구가 없다거나, 꽃값은 있지만, 꽃을 보낼 연인이 없다면 사람은 방전된 배터리처럼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돈이면 다 될 것 같고, 돈은 만능처럼 보인다. 하지만, 만약 돈이 충분히 생긴다면,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돈만 있으면 누구나 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어찌 엄마와 아들이 나눈 20마르크씩의 사랑에 비하겠는가! 그런 방정식을 생각해보니 이미 지방선거는 끝났지만, 아직도 서로에게 편안치 못한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한데 말이다.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어 미소를 나눠주면 어떨까? 누군가 먼저 입을 열어 함께 싸웠던 상대후보를 칭찬해주면 어떨까? 누군가 먼저 꽃을 보내 낙선한 후보의 마음에 새로운 꿈을 담아주면 어떨까? 물론 상대방은 내게 상처만 줬는데, 내가 그리하면 나만 손해 보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말이다. 내 미소에, 내 칭찬에, 내가 보낸 꽃에 상대가 마음으로 화답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과연 함께 경쟁한 후보들은 나의 철천지원수일까? 또 나를 지지하지 않고 상대후보를 도운 사람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사람들일까? 모든 물음이 숫자나 논리로 답하기가 쉽지 않다. 허나 <도덕방정식>이라면 답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선거는 선거일뿐! 목숨 걸지는 말자.

 김진<경희대 객원교수/전북생활체육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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