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표와 기의; 책상을 책상이라 말하라
기표와 기의; 책상을 책상이라 말하라
  • 박혜경
  • 승인 2014.06.25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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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상대방에게 내 뜻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말과 글 표정 몸짓을 쓴다.

 때론 한숨 눈물 미소로 애틋한 마음을 전한다. 그러나 요즘은 서로가 너무도 바쁘고 행동반경과 동선이 크고 글로벌해져서 마음을 전하고자 하는 이와 만나서 이마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럴 때 전화를 이용하여 대화를 나누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목소리 대화보다 문자로 대화하며 이모티콘 등으로 자신의 상황과 상태를 불특정 다수에게 무시로 대량살포 한다. 하지만 생각을 말고 하고 말을 글로 적으며 다채로운 어휘와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도, 온갖 매체를 이용해도 갈수록 소통의 단절을 느끼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자끄 데리다」의 말을 빌려오자면 기표는 기의에 닿지 못하고 미끄러진다지만

 온전히 닿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에게 가서 닿으려 오늘도 말을 하고 글을 쓴다. 

 재미있게 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다.

 노래경연으로 미래의 슈퍼스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거였다. 시청자도 참여하는 프로그램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는데 심사위원이 참가자에게 칭찬을 늘어놓은 날 그 참가자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 잘 했습니다.” “잘 봤어요.” : 안타깝게도 탈락입니다.

 “아직은 부족함이 있네요.” : 더 발전할 가능성이 많으니 합격이에요. 

 나는 17년째 미술품 전시회를 기획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지역 미술가들의 작품을 밖으로 알리는 일을 우직하게 해왔다.

 큰 미술시장에 작품을 전시하고 관람객을 맞이할 때는 하루에 수천여명의 관람객을 대한다. 관람객에게 작가를 소개하고 작품을 설명하면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작품을 판매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시름이 깊어가기도 한다. 작품 감상자의 구매 의사를 알아채고 순수한 예술품을 상품으로 전환해 가격을 제시해야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 그 상황 그 순간을 재빨리 알아채지 못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림을 구입하고자 하는 고객들의 공통적인 특성중의 하나를 익히는데 나는 많은 시간을 흘리고 소요했다. 이제 좀 알겠다. 별 거 아니다. 작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고객은 대부분 반드시 한두 가지씩 불평을 늘어놓는다는 것, 칭찬은 아끼고.

 나는 기표와 기의 사이를 그 멀고도 가까운 사이를 참 많이 오래 헤맸던 것이다. 

 현대 사회의 기표는 기의를 담아내기엔 상방 된 이미지 상상을 하게 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 빠져있다. 미치GO 신나GO 도시樂 멋진Girl등 중의를 아우르며 자연스럽게 조어를 즐기기더니 결국은 기표는 기의를 담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말들도 생겨났다.

 그대가 <브로콜리 너마저>라는 밴드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다면 그 목적은 이루어졌다. <조라이웅> <임꼭병학> <웃낌나언젠가> <호박태식탁>을 예명으로 삼고 있는 뮤지션들도 하나같이 뜻이 없는 게 뜻이라고 한다. 말의 홍수 속에서 말이 빛을 잃고 온기를 잃어가자 말에서 깃을 떼어내어 말을 무력화 시킨다.기표와 기의가 엇가서 낭패를 보기도 하지만 계산 된 의도로 기표와 기의를 교묘하게 바꿔치기도 한다. 

 스마트한 세상, 온갖 매체들이 쏟아내는 정보들은 그것이 사실로 규명되기도 전에 통제력을 잃고 내달려 수습할 겨를도 없이 확산 된다.발 없는 말이 천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내달릴 거라는 것을 옛사람들은 예전에 이미 알았다.

 숭고하다고 지나치게 목청을 높이면 숭고한 본래의 뜻이 반감된다. 숭고한 뜻이라고 말하는 이의 의도에 의해 숭고한 본래의 뜻이 훼절되기 때문이다. 신의를 잃어가는 사람이 믿어 달라 간청하는 것과 같이.

 과도한 표현은 언어를 공감각화 시켰다. 손을 맞잡고 눈을 마주치고 그윽하게 감정의 실체와 본질을 느끼고 나누는 것은 불가능할까? 그대여(나는) 부디 말을 줄일 일이다.

 우리의(그대의) 많은 말들이 거대 매체를 통해 정보를 과잉 생산 확대 하고 감정을 소진시켜 결국은 팩트를 무력화 시켰다. 팩트만을 기록하는 역사조차 기표와 기의가 같아야 함에도 승자의 기록으로 윤색된다면 가까운 과거 우리세대에 겪은 상황마저 세.월.이.흐.른. 먼 후일에 어찌 기록 될지 두렵고 안타깝기만 하다.

 역사에서 행간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눈물은 슬픈 사람이 흘리고 서러운 사람이 흘리고 약한 사람이 흘리는 게 맞다. 4대강은 반드시 살려야 하는 게 맞듯.
 

*이 글에서 기표와 기의는 ‘겉으로 표현된 것과 숨겨진 속마음’이란 의미로 썼다.
 
 박혜경<전주 서신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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