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의 논엔 모가 한창 푸르러 가는데
들녘의 논엔 모가 한창 푸르러 가는데
  • 황의영
  • 승인 2014.06.24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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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에 네댓 번씩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경기도, 충청도를 지나 전주에 다녀가곤 한다. 울긋불긋 산과 들에 꽃이 피었는가 싶더니 어느덧 녹음이 짙어가는 초여름이다. 강원도, 경기도부터 시작된 모내기가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로 이어지며 들녘의 푸르름이 짙어가고 있다. 어릴 적 내 고향에서는 모내기철이 되면 화학비료가 흔치 않을 때라 ‘풀령(인근 마을이 동시에 산에서 풀을 베는 것을 허가하는 것)’이 나면 산에서 풀을 베어다 논에다 넣고 갈아엎어 써레질을 하고 모를 심었다. 가뭄이 들면 천수답이 대부분인 산간부에서는 모내기를 하지 못한다. 모내기는 망종(芒種)에 시작해서 하지(夏至)를 지나고 소서(小暑)까지 진행됐다. 이때까지도 모내기를 하지 못하면 이제는 모내는 것을 포기하고 메밀이나 조, 콩을 심는다. 모내기는 마을의 중요한 행사다. 두레패는 벌판에 농기(農旗)를 휘날리고 풍물패가 농악을 울리며 풍성한 수확을 기원했다. 신명나는 농악 가락은 온 들녘에 울려 퍼지며 농업인의 흥을 돋우고 모심는 손놀림을 빠르게 하여 삽시간에 온 들녘을 연초록으로 채색해 놓았다.

 지금의 모내기는 하는지, 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넓은 들녘에 트랙터 한두 대가 논을 갈고 무논을 썰어 놓으면 이양기가 모를 심는다. 논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갈고 써레질하는 트랙터와 모를 심는 이양기만 보일 뿐이다. 이렇게 삼사일이 지나면 온 들판이 푸르러진다. 남쪽으로 내려오며 모내기가 진행되던 모내기도 6월 하순이 되면 이모작 논에도 모를 심어 우리나라의 모내기가 완료될 것이다. 모를 심기는 심는데 모내기하는 농업인의 마음은 속이 속이 아니라 두엄자리다. 솔직히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날씨가 좋아 농사가 잘될는지? 다 지어 놓은 농사가 태풍과 폭우로 쓸려가지나 않을까? 추수 후 쌀값은 좋을는지? 하는 지엽적인 걱정이 아니다. 1995년 이후 20여 년간 유지되던 쌀 개방 유예기간이 올해 말로 종료되는데 재연장 될 것인가? 아니면 관세화로 개방될 것인가? 초미의 관심사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단군 이래 최초로 우리의 주식인 쌀시장을 개방할지도 모를 농업분야의 위기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아무런 걱정 없이 모내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감출 수가 없다.

 세계무역기구(WTO) 원칙에는 ‘개발도상국 우대 원칙’이 있어 쌀시장 개방을 10년씩 두 번을 연기받았었는데, 이번에도 다시 같은 조항의 혜택을 받아 연기할 수 있을까?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는 지난해 5,596억 달러의 수출을 하고 440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8대 무역대국이다. 이런 우리를 개발도상국으로 인정해 줄 것인가? 정부 당국자도 통상관련학자도 농학자도 이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우리는 20년 동안 쌀 시장을 개방치 않으면서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이 40만 9천 톤까지 올라가 있다. 우리는 매년 의무적으로 1988년부터 1990년까지 3년간의 평균소비량의 7.96%의 쌀을 수입해야 한다. 지난해 쌀 생산량이 423만 톤이기 때문에 생산량의 9.7%에 해당하는 쌀을 소비가 있건 소비가 없건 간에 무조건 수입해야 하는 것이다. 이 또한 향후 농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상반기 지방자치 선거가 있어 쌀 개방 문제가 여론화되지 않은 듯하다. 대단히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너무나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좋으나 연말까지 시간이 없다. 정부에서는 우선은 쌀 개방 연기를 위해 세계무역기구(WTO)와 협상을 하여야 할 것이다. 협상은 상대가 있기 때문에 상대가 반대하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재연기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세계무역기구를 탈퇴하거나 아니면 쌀을 관세화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가 세계무역기구를 탈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쌀이 관세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한 지혜를 모아야 하는데 어떻게 대응하겠다고 하는 정책당국의 방향도 설정되어 있지 않은 듯하고 농업인이나 국민들을 설득시키려고 하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20년 관세화 유예 기간에 쌀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어떠어떠한 정책을 추진하여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추었는지도 알려야 한다. 그리고 개방과 연기 시, 각각 어떤 문제점이 있고 얼마만큼의 피해를 보게 될 것인가에 대한 연구기관의 연구결과도 발표하여 농업인과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과감히 밝힐 것은 밝히고 설득시킬 것은 설득시키고 안심시킬 것은 안심시켜야 한다. 무작정 깔고 앉아 시간만 죽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불안에 떨고 있는 농업인들에게 불안해하지 말라고 정부의 대안과 우리의 대책을 가지고 설득하여 이해시켜야 한다. 우리 농업이 붕괴하지 않으며 우리 식량창고의 열쇠를 남의 나라 농업인에게 절대로 넘겨 줄 수 없다고 하는 우리의 대책을 농업인과 국민들에게 설명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이 나라에서 생산되는 쌀로 식량을 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어려운 일들을 하기엔 연말까지 시간이 참으로 부족하다.

 황의영<전북대 무역학과 강의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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