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김효정
  • 승인 2014.06.2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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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관람 14

 인간은 보통 아기로 태어나 노인으로 생을 마감한다. 개개인의 삶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인간의 발달이라는 것이 보통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해진 삶의 경로가 지루해서였는지, 아니면 나이 먹는 것에 대한 서글픔 때문이었는지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인생은 무한히 행복하리라.” 그리고 이 말에 작가적 영감을 받은 F.스콧 피츠제럴드가 단숨에 써 내려간 이야기가 단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다.

 70세의 노인으로 태어난 벤자민 버튼. 그의 탄생은 세상과 그의 가족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한 사건이었다. 그렇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었고 공포였으며,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이나 환희는 그의 몫이 아니었다.

 성성한 백발에 긴 수염, 침침하고 흐린 눈으로 난생처음 직면한 세상은 냉담하고 차갑다. 그러나 그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시간의 역행’이다. 젊음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에게 주어진 젊음은 조금 특별했다. 나이와 반비례하는 그의 젊음은 바뀐 세상에서 빛을 발했으며, 그는 그 젊음으로 사랑을 했고, 돈을 벌었으며,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노인으로 태어나 소년으로 늙어가는 것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 가는 행복을 맛볼 수 없다는 것. 서로 다른 극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단 한 번의 스팟에서 그들은 같은 시대를 살며 서로를 공감할 뿐, 또 다시 시간은 그들을 각자 다른 세계로 인도하고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삶에서 멀어지고 만다.

 그리고 늙어서야 태초의 모습을 간직하게 된 벤자민에게 남은 것은 그저 뜻을 알 수 없는 웅얼거림, 희미하게 구분되는 냄새, 그리고 빛과 어둠 뿐이다. 졸리면 잠을 자고, 그 잠 속에는 어떤 괴로운 꿈도 없으며, 배가 고프면 울었다.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는 지각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도 그에게는 남지 않았다. 그리고는 암전. 생을 거꾸로 살아간 한 남자의 인생은 ‘죽음’이라는 단어보다는 차라리 ‘소멸’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듯하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다소 건조한 원작과는 달리 벤자민(브레드 피트)의 사랑이 부각된 작품이다. 판타지적 요소가 다분한 이야기지만 영화는 차분하게 벤자민의 삶의 여정과 사랑을 현실적으로 따라간다. 1918년에 시작하여 21세기를 관통하는 벤자민 버튼의 인생은 그가 만난 사람들과 장소, 만남과 이별을 되풀이 한 사랑, 생의 기쁨과 슬픔 등 시간을 초월한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인생을 순리대로 살든, 거꾸로 살든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별 차이가 없으며 죽음 또한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공정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니 인생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 한들 결국 인간은 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피츠제럴드가 명쾌하게 정의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젊음을 동경하며 살아가지만 시간의 흐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우리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간다. 어느 방향으로 가도 인간의 삶과 죽음이 그러하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현재의 내 모습에 충실하면서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마지막 도착지는 같은 인간들의 가장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 싶다.

 “인생에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나이는 없다”고 영화 속 벤자민은 말한다. 삶을 향해 망설이고 있다면 슬슬 용기를 내어야 할 시점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만고의 진리를 한번쯤은 확인해 봐야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김효정<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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