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챙이다리
새챙이다리
  • 진동규
  • 승인 2014.06.1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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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에 가면 새챙이다리가 있다. 새창이다리를 새챙이다리라고 부르는 것은 김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언어 습관이리라. 옛날에 이 만경강 끝자락을 지키는 군부대가 있었다는, 그래서 ‘창’이라는 이름이 있었던 모양이다. 다리의 입구 준공 기석에 새겨진 이름은 만경대교다. 단기 4266년이라 새겨져 있으니까 일제 치하 때다. 김제평야에서 생산한 쌀을 실어 나를 큰 다리가 필요했으리라. 한반도에서는 최초로 세워진 시멘트 다리라고 한다. 식민지 땅에서 맨 먼저 해야 할 일이 기름진 쌀을 본국으로 빼내야 할 일이 아니었겠는가. 만경대교가 누구를 위한 다리라는 말인가. 나라를 지키던 새창이 군인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겠는가. 새챙이 다리라 부르던 이들의 목멘 울먹임이 노을빛보다 더 진했을 터이다.

 새창이다리는 사용하지 않는다. 팔십 세를 넘겼으니까 낡아 못 쓰게 된 다리이기도 하다. 다리 기둥의 아랫부분에 깁스한 흔적이 있다. 강물에 깎여나간 부분을 두껍게 덧댄 것이다. 부러진 다리뼈에 부목을 대듯이 철골을 덧대고 세워진 다리의 열 배, 스무 배도 넘게 시멘트를 부어댄 것이다. 아마 영구히 버티어내라는 설계 같았다. 지금은 이 새챙이다리 양옆으로 새로운 다리가 놓여져 있다. 그때 쌀 실어 나르던 트럭보다 더 많은 물건들을 실어 나르는 다리인 것이다.

 새챙이다리 마을 사람들은 새만금 사업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삼십삼 킬로 새만금 둑은 군산에서 부안을 이은 것이지만 새만금의 중심에는 이 만경강 물이 있다고 말한다. 만경강 물을 그냥 바다에 버릴 수는 없을 터이고 새만금, 이 새로운 땅을 가꾸어 만들 물이 아니겠는가 강변한다.

 만경강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가. 전주의 삼천에서부터다. 크고 작은 물줄기 다 받아서 바다에까지 이르른 것이다. 하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새챙이다리까지 우리 몇을 부른 것은 이곳 청하면장이었다. 작은 도서관도 짓고 목욕탕도 지었다고 하지만 내막은 새챙이다리를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칫 행정편의주의로 흐른다 보면 흔적조차 없어져 버릴 수도 있는 다리가 아닌가. 어떻게든 제 역할이 남아 있다고 시인 면장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다리 위에 설치된 열려 있는 문화의 장이었다. 눈을 돌려 바라보기도 싫은 낡은 다리가 아니라 지역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역사가 거기에 있었다. 이 지역 출신 화가의 그림은 새챙이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다 보여주고 있었다. 그림이 선과 색이라 하지만 그 선과 색이 어떻게 구성되어지는가를 작가는 착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의 고향 마을을, 그 고향 마을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그렇게 쏟아 부어 놓았을 터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작가의 붓 자국이 꼭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봉이 막 휘젓고 간 자국이 아니던가.

 난간에 기대어 놓은 작품이지만 퍽이나 자연스러웠다. 눈비가 내려도 안전하게 보존해야 하니 신경이 쓰였겠지. 역사의 아픔을 한쪽으로 밀어두고 낯익은 시인들의 작품이 아기자기 사랑방을 만들고 있었다. 다리의 기능을 떼어버리고 이제는 그냥 물 위에 떠 있는 집이었다. 새만금을 향해 무한히 열려 있는 꿈의 산실이었다.

 진동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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