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七旬)을 맞으며
칠순(七旬)을 맞으며
  • 박기영
  • 승인 2014.06.1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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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화과정이나 사회발전과 같은 주제를 논할 때엔 그 기간이 유구하고 또심대한지라 통상 세기(100년)나 밀레니엄(1,000년)이란 시간단위를 사용하거나 아예 대(代)나 기(期)라는 좀 더 넓고도 포괄적인 척도를 동원하기도 한다.

허나 일찍부터 대(代)나 기(期)와의 비교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육신적 생명의 유한성을 알고 있었던 인간은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수명의 한계는 대략 일백년 정도라고 여겼던 것 같다. 허지만 거기에 이르는 시간은 강산이 열 번이나 바뀌는 기나긴 세월이라고 짧은 시간도 애써 늘려 잡으며 자위하고 살아온 성 같다.

때문에 인간의 수명은 감히 대(代)나 기(期)에 비유될 수 없는 찰나적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그들이 살아갈 십년들에 과감히 대(代)자를 붙여 10대, 20대, 30대... 등이라 칭명하였고, 더 나아가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등과 같은 기(期)의 명칭을 부여하면서 그것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임을 애써 강조하지 않았나 믿어진다. 또 그에 더해 그들이 살아가면서 행여 대(代)나 기(期)가 바뀌어 질 때면 거나한 축하행사나 이벤트도 빠뜨리지 않았으니, 그 대표적인 행사가 아마도 무사히 천수(天壽)의 절반을 넘어섰고 또 백년 줄에 십년이나 더 다가갔다는 희열과 육십갑자가 어울려진 환갑행사가 아니었었나 생각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환갑을 지나 한 걸음 두 걸음 백 살을 향해 접근해 갈 때면 의례히 칠순, 희수(77세), 미수(88세), 백수(99세)를 들먹이며 천수에로의 근접을축하하고 또 자랑했던 것들이 우리의 전래적 풍습이었다.

허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고도로 개선된 영양 상태와 의학기술의 발달, 또 이에 더해 다양한 복지제도의 확충으로 너 나 없이 백살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이제 환갑잔치는 전설속의 이야기가 되고 또 미수나 백수에 대한 반응조차도 무덤덤한 상태에 있다.

허나 현대문화와 이전문화를 동시에 체험한 과도세대들의 입장에서는 이들 행사를 챙겨 보자니 쑥스럽고, 그렇다고 그냥 지나쳐 버리자니 다소는 아쉬운 바 없지 않을 게다.

이런 현실적 상황에서 나는 몇 일전 칠순생일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환갑 해에도 그러하였듯이 이번에도 칠순해란 의미를 부여하며 이미 지난 연초 중남미지역에로 기념여행을 다녀온 바이었다. 허지만 칠순 생일날에는 생일날대로 여느 때와는 좀 더 의미 있는 이벤트가 갖고 싶어졌다. 그것도 타인으로부터 모심을 당하는 생일이 아니라 생일날을 계기로 내가 주체가 되어 그들에게 무언가를 베풀고 또 나누어 주는 생일행사를 말이다.

그 결과 이번 생일날에 내가 타인 특히 나의 자녀들에게 베풀고 또 나누어 주어야 할 우선적 행사는 전래된 우리집 가훈과 그 실천방법에 대한 설명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하여 칠순 생일날에 맞추어 나는 내 자녀들에게 머리 부분엔 우리집 가훈인 ‘和’(화)를 로고화하고, 또 봉 부분엔 “00 인생의 행운을 기원하며... 칠순 생일날에 아빠가”라는 문구가 새겨진 행운의 열쇠를 만들어 주면서 ‘和’(화)의 원리와 철학을 설명하여 주었다. 진실한 효도란 물질적 가치의 공여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의 부모에게 내가 항상 자랑스러운 자녀로 존재하고 또 나를 통해 나의 부모가 더욱 오래도록 생존하며 기억되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란 말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반응은 만족스럽고 성공적이었다.

때문에 이후 대(代)나 기(期)가 바뀌고 또 이벤트가 필요해 진다면 나는 그것들 역시 ‘받는 행사’가 아닌 ‘주는 행사’로 엮어내려 한다. 베풂의 대상도 내 자녀들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나의 베풂을 필요로 하는 모든 타인들에게 확대시켜 나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베풂의 내용과 비중 또한 희수(稀壽) 때에는 희수답게 내가 가진 것의 77%를, 또 미수(米壽)때에는 그 88%를, 그리고 백수(白壽)가 가능해 진다면 그때엔 내가 가진 것의 99%를 베풀어 주려고 마음먹어 보고 있다. 그렇게만 되어 진다면 나는 설령 출가승이 아닐지라도 자연스레 세인들이 그토록 대견스러워(?) 하는 무소유를 실천한 삶을 산 셈이 아니겠는가!

 박기영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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