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한 대의 여운
세탁기 한 대의 여운
  • 김보금
  • 승인 2014.06.10 17: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세탁기 덕분입니다.”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무원연수원 덕분에 심심치 않게 손님맞이를 하고 있다. 대접이라고 해야 한옥마을 구경에 막걸리 한 잔씩 돌리는 것이 전부이지만 그래도 초급간부교육 1년 연수를 전주에서 받는다고 하니 불편한 것이 없는지 살갑게 챙겨주고 싶었다.

 그녀는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다가 공무원이 되었다. 공무원이 되자마자 기다렸던 듯이 줄줄이 아이를 셋이나 낳았으니 대기업이나 공무원 아니면 대접받지 못하는 출산휴가를 잘도 활용한 사례이다. 사실 시민단체는 활동가 2~3명이 근무를 하는데 아이를 셋이나 낳으며 1년 만에 한 번씩 출산휴가를 이용한다면 함께 근무하는 활동가들에게 몹시 미안할 일인데다가 본인 자신도 감당하기가 매우 어려울 일이었으리라.

 그날 막걸리 집에서는 서울과 경기도에서 활동하던 후배들이며 혁신도시에서 연수받는 후배까지 함께하여 흡사 작은 토론회장을 연상케 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여성의 사회진출과 출산문제, 경력단절의 배경들을 화두로 한 이야기들이 잇달았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가 아이를 셋이나 낳으면서도 경력단절 여성이 되지 않고 계장으로 진급하기까지의 주요 배경으로 그녀의 상사인 A씨가 있었음을 역설하였다.

 처음에 농촌지역 발령을 받고 출산휴가에 들어갔고 다시 복직한지라 미안한 마음에 휴일도 없이 일을 하였다. 낮에는 아이 양육에 시어머님의 도움을 받았지만, 어린아이 세 명의 빨래 양만도 너무 힘든데다 집안 살림까지 도맡다 보니 그녀의 일상은 지침의 연속이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퇴근하여서 빨래를 한 후 또다시 사무실에 나가 잔무처리 하기를 거듭하면서 그녀가 더 이상 일을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그녀의 상사인 A계장이 사무실 화장실 한구석에 세탁기 한 대를 마련해 주었다. 자비를 들여서 설치해 놓은 세탁기 한 대! 이곳에서 아이들 빨래 문제를 해결하라는 지극한 배려지심이었던 것이다. 그 상사의 마음에 깊이 감동하였기에 오늘까지 견디어 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세월이 많이 지나 지금은 자신이 그때 그분의 위치에 올라 있다. 어린아이가 있는 후배 동료를 볼 때마다 집에서 세탁물을 가져와서 출근 후 직장에서 빨래해야 할 만큼이 아닌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렇더라도 그들이 일·가정을 원활하게 양립해 나갈 수 있도록 짬짬이 마음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일·가정을 양립하기에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신 A상사의 배려와 사랑이 어느새 내 마음에 뿌리내렸지 싶다.”라는…….

 6월4일 선거를 끝으로 민선 6기가 출범한다. 대부분 광역과 기초단체장들의 공약 1순위는 일자리창출이다. 여성일자리 현장을 세세히 지켜보아야 하는 직책에 있는 나에겐 무엇보다도 여성이 일할 수 있는 기업과 공간의 창출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다. 여기에 공간이라면 기업이며 스스로 창업,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으로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공간은 크고 작은 많은 기업체들이다. 도민인 여성구직자들이 그들의 노동력을 흔쾌히 제공하면서 이 지역을 떠나 방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다음으로, 신경이 쓰이는 바는 기업대표들의 철학이다. 많은 기업인들은 과거보다 여성 노동력에 대한 효율성에 대하여 높이 평가를 하지만 아직도 일부는 여성들을 한 공간 속의 조력자 역할로 한정하며 낮은 임금이며 계약직으로 머물게 하는 사례들이 있다. 믿을 만한 통계에 의하면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61%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다르게 일을 하는데 동일한 임금이 가능한 일이냐며 답답한 소리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럽에서 시작된 캠페인인 ‘동일임금의 날’을 직시해 볼 일이다.

 한 가지 켕기는 바는 직업에 맞닥뜨린 취업자들의 마음가짐이다. 기업인들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에 다른 다양한 요구도 못지않게 기업이 운영이며 이익창출에 대한 주인의식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일단 취업을 한 이상은 그 직장에 꼭 있어야 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한다면 고용은 계속 이어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6월이다. 2014년 반절을 여닫는 달이다. 바통 터치할 2014년 후반기를 향해 향한 힘찬 도약을 바라본다. 나야말로 감동적인 노래, ‘천개의 바람이 되어’ 중의 한 개 바람인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 라고 노래 부르고 싶다.

 김보금<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