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화재사건과 불편한 진실들
요양병원 화재사건과 불편한 진실들
  • 김형준
  • 승인 2014.06.03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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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8일 장성의 한 요양병원에서 한 환자의 방화에 인하여 21명의 귀중한 생명이 목숨을 잃어버리는 참사가 있었다. 지금도 충격이 생생한 세월호 사건과 6명의 생명이 희생된 고양버스터미널 화재사건 등 연이어 발생한 재난성 사고에 온 국민이 이제는 허탈감마저 느끼는 듯하다.

앞선 사고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고도 요양병원 측의 허술한 환자관리와 턱없이 부족했던 근무 인력 등 안전불감증이 낳은 대표적인 인재라는 분석이 많은 것 같다. 실제 화재는 수분 만에 진압되었음에도 21명의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는 점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무엇을 잘못 했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통해 드러난 노인요양병원의 구조적 모순과 취약점도 분명히 짚고 넘어갈 문제라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노인요양병원이 우리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을 했다. 요양병원은 대부분 치매나 뇌졸중 등 노인성 질병의 치료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없는 환자의 간병을 동시에 제공하는 병원을 말한다. 즉 급성기의 치료보다는 만성적인 상태에 따른 의학적 관리나 재활 그리고 간병을 위주로 하는 병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에 왜 이런 요양병원이 많이 생기는 것일까?

우선은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그만큼 치매나 뇌졸중 같은 노인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질환은 늘어났는데 과거보다 생존율이나 기대수명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노년을 만성 노인퇴행성 질환을 가진 체 살아갈 가능성이 높아졌고 가족들은 장기간 이들을 돌봐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

또한 핵가족화되고 아파트와 같이 주거 환경이 바뀌면서 실제로 가족만의 힘으로 중풍이나 치매환자를 돌보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 되었다. 그러면서 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요양병원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한편으로 출산율이 감소하고, 대학병원급 대형병원의 무한 확장, 원가에도 못 미치는 건강보험의 수가 등 의료를 둘러싼 생태계가 급격히 바뀌면서 경영난에 빠진 기존 중소규모의 병원급 의료기관들이 그나마 수요가 있는 노인요양병원으로 탈바꿈하면서 요양병원의 병상수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2002년 전국 54개에 불과하던 요양병원이 2013년 현재 1,268개소의 요양병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11년간 무려 20배의 증가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북은 약 80개소가 운영 중으로 전국 6위이지만 인구를 대비하면 전국 최고 수준의 병상수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요양병원 증가의 문제는 결국 지나친 경쟁과 건강보험 재정의 악화로 이어져 또다시 경영난과 부실 운영 악순환의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낮은 보험수가로 몇몇 요양병원들이 최소한 인력기준과 시설만을 갖추고 영세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한다.

현재의 요양병원 건강보험 수가는 등급별로 된 포괄수가제로 인력과 환자의 중증도를 기준으로 병원별, 환자별 등급을 정하고 수가를 주는 형태로 현 수가로는 최소한의 인력을 통한 치료와 간병만이 가능한 형태로써 사실상 안전사고에 대응하기 위한 충분한 시설과 인력을 확보하기란 불가능한 현실이라고 요양병원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요양병원의 환자는 거동이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와상상태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치매 등으로 정상적인 판단능력도 상실한 노인 환자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의료진도, 간병인도 일반 환자보다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안전시설도 충분히 갖추어져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을 것이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요양병원 인증제도와 적정성 평가를 통해 적정 인력기준과 시설기준을 정하고 이를 통해 건강보험수가를 차등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정한 최고 등급 수준의 인력이 선진국에 비하면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적정수준이라 보기도 힘들고, 정해진 최고 등급 건강보험수가가 충분하지 못해 최고 등급 수준으로 운영하면 환자를 볼수록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인력의 확보를 포기하고 적은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보는 쪽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 최고 등급 수준도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기준이지만 현 수가로는 그 등급을 유지하여 병원을 제대로 운영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라는 점이다.

 사고가 발생한 병원의 환자관리나 인력기준 등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어떤 문제는 없었는지는 분명히 밝혀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요양병원의 수요와 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실에서 이런 사고의 재발을 막으려면 한 병원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정부의 요양병원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노인복지와 의료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번 같은 비극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형준<신세계병원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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