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김효정
  • 승인 2014.06.0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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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소설 관람 12

 작가 마가렛 미첼이 남긴 유일한 작품 바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

 평생에 단 한 작품만을 썼음에도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까지 사랑 받는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는 그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책장 한 켠에 꽂혀 있던 오래되고 낡은 세계문학전집에서 이 책을 처음 발견하고 익숙지 않은 세로줄 본문을 자를 대가며 읽어 갔던 그 때, 열 다섯 살의 나는 스칼렛 오하라라는 인물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첫 문장이 “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이 아니다”로 시작함에도 그녀는 충분히 매력적이어서 인기가 많고, 이기적이면서 허영심도 있지만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서는 당찬 여성이다.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가 없자 커텐을 뜯어 드레스를 만들어 입고 나가는 그녀의 재기 발랄함! 1990년대 당시에도 무척 튀는 캐릭터를 1930년대에 이미 그려낸 작가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미국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그 시대의 다양한 인간군상과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사실 꽤나 통속적이기도 하고, 인종차별이나 작가의 출생지의 한계로 한쪽으로 치우친 역사관 등이 아쉽다. 그러나 충분한 대서사를 갖추고 있는 이 작품은 녹록치 않은 스케일을 보여준다. 사실 책도 유명하지만, 알다시피 비비안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는 더 유명하다. 당시 어린마음에 영화를 보며 ‘왜 스칼렛은 레트 버틀러처럼 멋진 남자를 놔두고 저렇게 매력 없어 보이는 애슐리 윌크스를 좋아하는 것일까’라는 강한 의문을 품었지만 (책과 달라도 너무 다른 애슐리~) 비비안리와 클라크 게이블의 앙상블이 너무 좋아서 흑백 영화인데도 컬러 영화를 보듯이 행간의 색감들이 화면에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런던의 일간지 <옵저버>는 지난 50년 동안 탄생한 소설의 주인공들 중 셜록 홈즈와 피터 팬의 동급으로 스칼렛 오하라를 꼽았다고 하니, 그녀가 이 작품에서 주인공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마가렛 미첼은 이 소설의 주제를 ‘생존’이라고 했다. “재난을 만나도 쉽게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능력 있고 강하고 용감한데 굴복하고 마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격변에서 그렇다. 살아남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의기양양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없는 특징이란 무엇일까? 나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말하는 불굴의 정신이 무엇인지 알 뿐이다. 그래서 불굴의 정신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어떠한 상황이 닥쳤을 때의 마음가짐과 행동들을 아무리 시뮬레이션 해본다 한들, 막상 그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다. 불굴의 정신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발휘되어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되어 주는 강력한 무기가 아닐까.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결국 ‘나’이다.

 모두가 떠나고 폐허가 된 땅 위에 홀로 서 있던 스칼렛은 석양을 바라보며 말한다. “내일 생각하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테니.” 너무나 유명한 이 대사는 끝을 끝이 아닌 다시 새로운 시작으로 바꿔 놓는다. 영화도 끝나고 책도 마침표를 찍었건만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덩달아 내일 아침의 태양을 기다리게 하는 설레임의 그 한마디 때문에 나는 여전히 스칼렛을 잊지 못한다. 내일의 태양이 다시 고통의 시작일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은 다 지나가기 마련이다. 삶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굴의 정신을 발휘 할 수 있는 내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김효정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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