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찾아서 - 백초월(白初月)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찾아서 - 백초월(白初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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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6.0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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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초월(白初月) 선생은 1878년 경남 고성에서 부친 백하진과 모친 김해 김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수원 백씨 26세손으로 소년 시절인 1891년 지리산 영원사로 출가하였다. 해인사에서 경학과정을 마친 후 교종의 최고 단계인 대교사(大敎師) 법계를 받았다.

  선생은 기독교와 천도교 등 여타 종교에서는 3.1운동에 적극 가담한데 반해 불교계가 무관심한 것을 개탄하면서 진관사를 비롯한 전국 사찰을 돌며 항일 이념인 일심교를 전파하였다. 특히,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인승려들의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번갯불 번쩍 할 때 바늘귀를 꿰어야 한다.”며 독립운동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즉시 가담할 것을 종용하였다. 또한, 중앙학림(現 동국대)내 한국민단본부를 설치하여 상해 임시정부 및 독립군에게 제공할 자금을 모금하였다.

  또한, 선생은 1919년 단군 건국일 기념 및 1920년 일본 3.1운동 1주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에 체포되었다. 이후 1920년 승려독립선언서와 의용승군제 추진을 통해 불교 독립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편, 일제는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만주 침략의 발판으로 삼고자 용산역을 군인 및 군수물자 보급기지로 활용했다. 이에 선생은 전쟁터로 끌려가는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만주행 군용열차에 “대한독립만세” 격문사건을 주도하였다. 이 사건으로 선생을 비롯한 일심회 회원 등 80여명도 체포,구금되었다. 선생은 출옥 후에도 군자금 모금 활동을 계속하다 또다시 체포되어 청주교도소에 투옥되었고, 1944년 6월 29일에 옥중 순국하였다.

  이에 정부는 1990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전주보훈지청 제공, 문의 ☏063-23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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