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 김효정
  • 승인 2014.05.26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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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 관람 11.

 학창시절 야간자율 학습을 튀고 학교 앞 노래방에서 신나게 탬버린을 흔들고 있자니 주인아주머니께서 ‘학생들 공부 안 해?’라고 걱정스럽게 물어보셨다.

 장사꾼의 마음보다 엄마의 마음이 더 컸던 노래방 아주머니 덕분에(?) 우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대학에 입학하자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걱정해주는 노래방 아주머니도 없어진 나는 또 튀었다. 개강하는 날 나는 학교에 가는 버스 대신 부산 가는 기차를 탔다. 그러나 그곳에서 자유의 밍밍한 맛에 실망만 느끼고 왔을 뿐, 그 뒤로도 몇 번의 일탈이 있었지만 나는 곧 사회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타성에 젖은 어른이 되어 버렸다.

 치기어린 소소한 일탈은 지금은 그저 추억이 되었지만 팍팍한 현실에서 우리는 종종 어디론가 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조직 사회에서 ‘튄다’는 것은 그야말로 ‘튀는’행동이 되어 버리고 그것은 반사회적인 인물로 낙인찍혀 왕따가 되기 십상이다. 가끔 반항이란 걸 하고 싶지만 그것은 오로지 상상의 몫. 현실은 다람쥐 쳇바퀴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를 보면 국가를 향한 개인의 반항 아닌 반항을 통해 유쾌, 상쾌, 통쾌의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다.

 우에하라 지로는 아빠 때문에 좀 창피한 초등학교 6학년 사춘기 소년이다. 늘 집에서 빈둥거리는 지로의 아빠 ‘이치로’는 왕년에 사회주의 학생 운동가 출신으로 무정부주의자다.

 매사 국가에 불평불만이 많은 그는 콜라와 캔 커피는 ‘미국의 음모이며 독’이고, 학교 같은 건 다니지 않아도 괜찮다면서 경찰은 ‘국가의 개’라느니, ‘관청이 벌레보다 싫다’는 등의 소리도 서슴없이 한다. 그렇지 않아도 불량중학생 ‘가쓰’에게 잘못 걸려 고민이 많은 지로에게 이런 아빠는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걱정거리만 보태주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로네 가족은 어떤 사건에 휩싸이면서 도쿄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남쪽의 이리오모테 섬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지로는 점차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올바른 정의가 무엇인지를 하나씩 배워간다.

 지로의 성장담과 이치로의 통쾌한 언행 덕분인지 책은 무척 인기가 많았지만 원작과 달리 임순례 감독이 만든 영화 <남쪽으로 튀어>는 흥행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한 영화이기도 하다. 개봉 전부터 주인공 최해갑이 국민연금 납부와 TV수신료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며 해당기관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하니 헛헛한 웃음만 날 뿐이다. 그러나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부조리한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라는 원작과 다르지 않다.

 또 한편으로는 ‘이치로’나 ‘최해갑’이나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한들, 결국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버리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해지기도 하지만,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인 ‘남쪽’을 향해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적이지 않을까 싶다.

 ‘세월호’ 사건 이후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의 표현이다. 그러나 평범한 소시민인 우리는 튈 곳도 마땅치 않다. 갈 곳이 없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갈 곳이 없다면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을 훈풍 부는 ‘남쪽’으로 만들면 될 것이다. 곧 6.4지방 선거가 실시된다. 투표야 말로 국가를 향해 국민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고 살만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다. 우리의 한 표는 분명 그럴만한 힘이 있다.

 김효정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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