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자리
지도자의 자리
  • 임규정
  • 승인 2014.05.22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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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더니, 지도자가 되거나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서, 혹은 지도자를 꿈꿔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는 책들이 서점의 한 구역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지도자를 꿈꿔야 하는 사회에 산다. 실제로 지도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마음만은 지도자를 꿈꾸는 것이 가능하고 또 바람직한 것처럼 포장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책들은 지도자의 자리에 선다는 것이 무엇을 수반하는지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지도자(指導者)는 가리키고 이끄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는 단어이다. 지도자의 영어 표현인 리더(leader) 또한 안내하거나 이끄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같은 의미라 할 수 있겠다. 모두의 앞에 서서 그들이 함께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그 길로 가도록 이끄는 작업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게다가 그 책임감은 또 얼마나 막중한가? 자신의 선택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발생한 일에 대해서조차 모두 책임져야 하는 자리, 그러한 자리가 바로 지도자의 자리이다. 그래서 지도자는 누구보다 고독하고 외로우며 괴로운 사람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도자의 자리가 이토록 고독하고 괴로운 자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첫걸음이라는 점이다. 최근 다시 주목받는 2011년에 방영되었던 “뿌리깊은 나무”라는 드라마에서 세종이 내뱉는 절규는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조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책임이다.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 그게 임금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어떤 변명도 필요 없는 자리. 그게 바로 조선의 임금이라는 자리다.”

극 중 세종은 괴롭고 고통스러운 군주다. 동시에 이 고통은 세종이 위대한 군주였음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된다. 그러나 그 고통을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세종을 위대한 왕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좋은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뚫고 나가야 함을 의미하는 셈이다.

지난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와 관련하여 대국민 담화를 진행했다. 이 담화에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에 대해 사과하면서 그와 관련된 몇 가지 후속 대책, 특히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 내용을 보면 국가안전처를 신설하여 기존에 해경에서 담당하던 해양 구조, 해양 경비 업무 및 안전행정부에서 담당하던 안전 업무, 그리고 해수부에서 담당하던 해양교통 관제센터(VTS)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고, 해양경찰청은 해체한다는 것이다. 또 퇴직 고위 공직자의 취업 제한 대상 기업을 확대하는 등의 정책을 통하여 민관 유착, 이른바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담화에서 민관 유착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엿보이고, 또 그 대책들이 잘 수립된다면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할 만 하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구조 및 경비, 그리고 안전 업무만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기관을 신설하여 상시 대비 태세를 갖추도록 한다면 추후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더 잘 대응하리라고 기대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러한 구체적인 대책을 넘어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한다. 애초에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시기가 4월 16일임을 감안한다면 이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가 너무 늦었다. 사고 이후에 일어난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국민을 분노케 했던가?

처음에는 전원을 구조했다고 발표했고, 그 이후에는 구조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거짓말이 자행되었음이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일이 없더라도, 대통령이 그 임기동안 책임져야 하는 수백의 국민들의 아까운 목숨이 스러져간 비극에 대하여 지도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더 일찍 사과했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아직 진도 앞바다에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이 바다를 떠돌고 있다. 실종자 구조 작업이 끝나기 이전에 해경 해체를 발표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게다가 대통령의 담화에 실종자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또한 아직 남아 있는 실종자들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지 안타깝다.

이제 5월이 저물어간다. 아직 우리는 4월의 그림자에 머물러 있다. 대통령은 담화에서 “이제 좌절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세월호 사고가 고통스러운 만큼 빨리 잊고 싶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것은 아니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 우리는 아직 다 좌절하지도 못했다. 최소한 진도 앞바다에서 마지막 실종자가 구조될 때까지라도 우리는 그 일을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한다. 모두가 다 잊어도 대통령은 그래야 한다. 그것이 지도자의 자리다.

 임규정<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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