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 김효정
  • 승인 2014.05.1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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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관람 9

 집도 없이 결혼과 함께 몇 년 동안 세계 곳곳을 누비며 배낭여행을 하고 있다는 신혼부부, 스마트폰 앱 개발에 직장이 걸림돌이 된다며 안정된 대학 교수직을 그만둔 젊은 CEO. 사회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들은 ‘미쳤다’라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집,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과감히 포기, 아니 선택하지 않은 이들을 보면서 사실 걱정보다는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이것저것 세상 것에 치이다 보니 엄두도 안 나던 일들을 누군가는 태연하게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한번 미쳐봐?’라고 마음먹다가도 내 발목을 붙잡는 삶의 조각들 덕분에 여전히 반복된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 우리네 모습이다.

 그러나 ‘조르바’는 “사람은 어느 정도는 미쳐야 한다. 미치지 않으면 밧줄을 끊어버리고 자유를 얻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는 스스로가 자유의 상징이었다.

 너무나 유명한 이 고전 명작은 더 말할 것이 없지만, 조르바라는 매력적인 인물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몇 번을 곱씹어도 지나치지 않다.

 어느 날 문득 내 앞에 나타난 조르바. 그는 자기를 어디든지 데려가 달라고 말하면서 거침없이 행동하고 말한다. 그러한 자유분방한 모습에 매료된 ‘나’는 즉시 그와 동행하고, 크레타 섬의 어느 한 광산에서 그들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들을 보내게 된다.

 친구들은 전쟁터로 떠났는데 자신은 책을 붙들고 찾지 못할 이상향을 갈구하던 모습에 괴로워하던 ‘나’는 조르바의 그 야생성과 단순성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점차 깨닫게 된다. 앞뒤 가리지 않고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만, 행동 후에는 결코 후회가 없는 조르바. 조르바는 책 속의 모든 진리를 비웃는다. 삶이 그렇게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순이 넘은 한 남자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자신의 모든 내면을 춤으로 표현해내며, 산투리를(악기) 연주하는 조르바. 그의 춤과 그의 연주는 어쩌면 활자와 음성언어의 모든 모순성을 비웃으며 스스로의 진실에 더욱 충실한 언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크레타섬에서 조르바가 맡았던 탄광과 해안선을 잇는 케이블 공사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지만, 나와 조르바는 그때서야 진정한 해방감을 느끼게 되고, 해변가에서 두 사람은 그 해방감을 춤으로 이야기한다.

 책이 오래된 만큼, 영화도 조금 오래전에 만들어졌다. 1964년 안소니 퀸이 조르바역으로 열연하며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원작의 감동에는 못미치지만, 흑백영화로 보는 배우들의 명연기와 이국적인 풍경들은 색다른 분위기를 만나볼 수 있다.

 책 속 화자인 ‘나’는 항상 자신의 무력함과 인텔리적 성향에 괴로워하며 일정한 경계선을 그어 놓고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소심함에 화가 난다. 그러한 ‘나’에게 조르바라는 인간과의 만남은 그 경계선을 넘는 일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며, 그 너머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자아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지금 내 앞에 문득 조르바가 나타난다면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자유를 갈구할 용기가 있을까.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무언가에 미쳐봐야 살맛도 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다면, 우선 내민 손을 잡는 것부터 시작하자, 덥석!

김효정<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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