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큰헤이드호의 교훈과 세월호의 아픔
버큰헤이드호의 교훈과 세월호의 아픔
  • 김윤덕
  • 승인 2014.05.06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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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사람들은 배를 타고 가다 재난을 만나면 “버큰헤이드 호를 기억하라”고 차분하게 속삭인다고 한다. 영국 사람들이 긍지를 가지고 오랜 시간 동안 이어오고 있는 이 전통은 18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 해군의 자랑이었던 수송선 ‘버큰헤이드 호’는 군인과 가족들을 태우고 남아프리카로 항해 중이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630명중 130명은 부녀자였다. 순조로운 항해 도중 어느 날 새벽에 배가 바위에 부딪혔고 침몰하게 되었다. 당시 구명정은 3척, 1척당 정원이 60명이니 구조될 수 있는 사람은 180명이 전부였다.

 이때 사령관 시드니 세튼 대령은 전 병사들을 갑판 위에 집합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3척의 구명정에 부녀자들을 태우도록 했다. 수백 명의 병사는 그 명령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마치 승선 명령처럼 철저히 준수했다. 구명정을 타고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게 된 가족들은, 갑판 위에서 의연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흐느껴 울었다. 한나절이 지나고 구조선이 도착해 탈출한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구조했지만, 그때는 이미 세튼 대령을 포함한 436명의 목숨이 수장된 후였다.

 이 사건은 영국은 물론 전 세계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이전까지는 배가 조난될 경우 저마다 제 목숨부터 구하려고 큰 소동을 벌였다. 당연히 힘센 남자들이 먼저 구명정을 탔고 연약한 아녀자와 어린아이들은 침몰하는 배에 남아야 했다. 그러나 버큰헤이드호에서 ‘아이들과 여자가 먼저’라는 전통이 만들어진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바로 다음날 새정치민주연합은 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으로 당 대책위원이 된 필자는 고려대안산병원 장례식장과 단원고 현장을 차례로 방문했다. 당혹스런 사건 앞에서 밀려오는 참담함과 슬픔을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순간 1993년 전북 부안에서 발생했던 서해 훼리오 사건이 떠올랐다. 두 번 다시 생각조차 하기 싫은 악몽이 또다시 현실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난 21년 동안 눈부신 경제성장과 과학발전을 이루었음에도 이런 비극적인 대참사가 왜 또 반복되는지 믿기지 않았다.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다” 지난 2004년 대한민국 국민이 이라크의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되어 무참하게 피살되었을 때,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세월호 사건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대응을 질타하는 국민의 여론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과연 어떤 국가가, 어떤 정부가, 어떤 정치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반성하고 또 반성해도 그 슬픔과 분노가 가시질 않는다. 정치를 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아니 그보다도 이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죄송하고 비통한 마음을 어찌 전해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우리 모두가 사고의 공범이고 책임자라는 걸 잘 알기에 자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난 보름동안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참으로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 정부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피해자가 원하는 실질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 부끄럽고 안타까웠다.

 앞으로 해야 할 많은 일들도 걱정이 앞선다. 자녀를 떠나 보내는 부모, 아직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도 못한 가족, 자신들의 생업에 피해를 보면서까지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사람,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온 국민들을 생각해서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부는 사퇴 카드를 내밀며 국면을 전환할 생각에 앞서, 사고수습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교육부는 단원고 학생과 교사만이 아니라, 희생자의 가족과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에게도 세심하게 심리치료와 다각적인 도움을 지원해야 한다. 학생의 심리적 안정이 가족생계와 지역사회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인지해야 한다.

또한, 이번처럼 참담한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사고의 원인을 면밀히 검토하여 학생 재난 안전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사고 예방부터 수습·치유·복구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조속히 수립해야 한다. 국회도 여야를 떠나 모두 함께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취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두 번 다시 떠올리기 싫은 ‘서해훼리오 사건’과 ‘세월호’의 악몽을 철저히 분석하고 ‘버큰헤이드 호를 기억하라’던 말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이다.

 김윤덕<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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