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정녕 잔인한 달인가
4월, 정녕 잔인한 달인가
  • 이용숙
  • 승인 2014.04.29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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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히 기다린 봄이 얼어붙은 시신으로 올라오고 있다.
 욕되고 부끄럽다. 이 참담한 땅의 어른이라는 것이.
 만족을 모르는 자본과 가식에 찌든 권력,
 가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무능과 오만이 참혹하다.
 미안하다. 반성 없이 미쳐가는 얼음나라,
 너희가 못 쉬는 숨을 여기서 쉰다.
 너희가 못 먹는 밥을 여기서 먹는다.

 김선우 시인의 <이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일부분을 적는다.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함께 읽다가 목이 메어 끝까지 읽지 못했고 순간 강의실은 속울음으로 통곡의 바다가 되었다. 대명천지에 어찌 이런 청천벽력이….

 엘리어트는 <황무지> 서두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바 있다. 그 4월이 핏물 흥건한 잔인함 속에 저물어간다. 입에 올리기조차 끔찍한 ‘세월호’. 무능하고 무기력한 정권과 행정, 폭리에 눈이 먼 탐욕의 자본, 있으나마나한 구조 시스템과 특종에 허기진 언론들. 4월은 정녕 잔인하기 그지없다.

 1993년 10월, 우리 지역 위도 앞바다에서 292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간 서해훼리호의 악몽과 아픔이 되살아난다. 상식과 원칙이 실종된 사회, 안전이 증발한 총체적 부실이 가슴을 찢는다. 성수대교 붕괴·삼풍백화점 참사·충주호 유람선 침몰·대구 지하철 화재 등등. 너무 잦은 사고 공화국이 부끄럽다.

 그때마다 교훈으로 삼자면서 호들갑을 떨었던 지난 시간들이 더욱 아프다. 사회 안전망 구축, 선박이나 항공기의 안전과 구조 매뉴얼의 점검, 감독기관의 철저한 관리감독, 할 일이 너무 벅차다. 선박과 해운업의 선진국이 안전과 구조에서는 꼴찌가 되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하랴.

 4월 그 잔인한 달, 우리 모두는 무너졌다. 사망한 영혼들과 그 유가족, 살아남은 이들의 죄스러움과 허탈감, 관계 당국과 온 국민, 아니 지구촌이 함께 4월의 몸살을 앓고 있다. 그야말로 멘탈 붕괴<멘붕>이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운회사 청해진도, 먼저 탈출한 선원들도, 행정당국과 감독기관도, 그리고 정치권 언론도 숱하게 매를 맞고 있다. 무려 여덟 번 넘게 바뀌며 갈팡질팡하던 통계숫자로 전 국민의 정신을 요동치게 한 것이다. 탑승객 476명 중 구조·생존자 174명. 열흘 넘게 TV 앞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단 한 명의 생환자가 없으니, 무려 302명의 원혼들은 어디에 떠돌고 있는가? 그것도 90여명은 차가운 물속에서 아직 시신조차 인양하지 못했으니…….

  97년 IMF가 터졌을 때 평소 흠모하고 가르침을 받아온 한 어르신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왜 이런 국가부도의 참극이 일어났느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물으셨다. “이 재난은 하늘이 허랑방탕에 젖은 민족에게 주신 교훈이라고. 그리고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이르셨다. 그러면서 우선 자신을 돌아보아 잘못의 작은 하나라도 찾아서 반드시 고쳐 보라고 타이르셨다. 온 국민이 개선해 나가면 재난은 극복되고 더 좋은 내일이 오리라고.

 잘잘못은 반드시 규명하고, 책임은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그리고 재발 방지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다시 나 자신을 돌아보아 상식과 원칙에 벗어날 행위는 철저하게 고쳐야 한다. 생텍쥐베리는 말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불확실성의 미래 사회에서 ‘안전’은 최우선의 과제이다.

 
  다시 4월의 은총을

  지난 20일은 기독교의 부활절이었다. 또 28일은 원불교의 대각개교절, 오는 5월 6일은 불교의 부처님 오신 날이다. 예수의 사랑과 대종사의 은혜와 석가의 자비가 온누리에 충만해야 할 것이다. 꽃 같은 우리 아이들을 가슴에 묻고 잿더미가 된 가슴으로 운다. 참담한 슬픔 속에 간절히 갈망한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의 빛이 다시 찾아오기를!

  솔로몬 왕자가 말한 바 있다. 이 세상의 어떤 희노애락에도 비극과 절망 속에도 위로받을 수 있다는 말 ―모두 다 지나 가느니라―. 언젠가는 저 서해훼리호처럼,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때처럼 잊혀 지겠지만, 그래서 결국 기억 저편으로 자리를 옮기겠지만, 정녕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아이들을 보듬고 꿈을 잃지 말아야 한다. 안전 일등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하리라. 그리하여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넘치는 세상을 맞이하자. 다시 김선우의 시 한 구절을 적어본다.

 환멸과 분노 사이에서 울음이 터지다가
 길 잃은 울음을 그러모아 다시 생각한다.
 기억하겠다, 너희가 못 피운 꽃을.
 잊지 않겠다, 이 욕됨과 슬픔을.
 환멸에 기울어 무능한 땅을 냉담하기엔
 이 땅에서 살아남은 어른들의 죄가 너무 크다.
 너희에게 갚아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시인은 “살아 있어라, 제발 살아 있어라.”하고 목놓아 절규한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꽃으로 오래오래 살아있으리라.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아들아 딸아!

  이용숙<전주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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