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김 라일락의 고향
미스김 라일락의 고향
  • 김진태
  • 승인 2014.04.28 17: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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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봄이 한창이다. 만물이 생동한다는 이 계절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주변 화원이나 묘목판매점을 기웃거리며 화려한 색상을 자랑하거나 탐스러운 꽃을 피울 수 있는 원예품종에 관심을 가지거나 사시사철 변함없는 모습을 가지는 품종 등 개인의 기호와 여건에 따라 구입하기도 한다. 수많은 품종들 중에서도 특히 봄철에 피는 꽃들 가운데 우리의 후각을 은근히 자극하며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는 향기가 있다. 봄을 대표하는 향기라고 할 수 있는 라일락꽃 향기다. 제법 굵은 줄기를 가지는 경우도 있지만 흰꽃을 피우며 억세거나 거칠지 않은 가지 끝에 피어난 예쁘고 탐스런 꽃들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라일락 중에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품종이 있다. 일반적인 라일락보다 작게 자라도록 왜소하게 개량된 품종으로 보라색이 흰색으로 변하면서 개화하고 향이 진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름에 담긴 이 품종의 탄생과정을 알면 두고두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미스김 라일락에 얽힌 사연은 대충 이렇다. 1947년도에 미국 군정청의 식물채집가였던 엘윈 미더(Elwin M. Meader)가 북한산에서 채집한 털개회나무 씨앗을 미국으로 가져가 개량을 시도하였고 결국 성공하였다. 개량하여 만들어진 품종 명칭을 고민하던 차에 당시 식물자료 정리를 도왔던 한국인 타이피스트 미스김의 성을 따서 붙였다는 것이다. 관심을 둬야 할 점은 미스김 라일락이라고 개량된 품종이름을 한국인 성으로 붙였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고유종의 특성을 우리보다 외국인이 먼저 인식했다는 것과 고유종의 종자가 외국에서 개량되어 오늘날까지 수입종자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전라북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종자보급이나 종자산업과도 연관된다. 자국의 고유종자를 보존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고 경제적이나 생물학적 특성을 고려한 개량과 보급계획 수립은 단순히 취미활동 수준에 머물 수 없는 문제이기에 면밀한 과학적 접근과 전문적인 인식이 요구되는 것이다.

 해마다 수확철에 발생하는 농가들의 불만에는 종자문제가 포함된다. 농가는 종묘상을 신뢰하고 경제적 가치를 고려하여 종자를 구입했는데 수확기는 고사하고 제대로 성장조차 이뤄지지 않는다면 농가는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결국, 종자가 제대로 관리되거나 보급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시스템의 필요성이 대두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종자에 대한 안정적인 유전자원 파악과 관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현재 국내 종묘상에서 유통되는 대부분 종자들은 다국적회사에서 개량했거나 변형된 수입종자들이고 우리 농가에서는 해마다 그 종자들을 구입해서 경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고유종이나 토종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족했던 시기에 종자에 대한 생태적, 경제적 가치보다는 생산에 대한 가치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여건에서 제대로 된 종자보존은 진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종자산업의 중요성이나 가치를 인식하여 이 부분에 대한 집중적인 사업발굴과 추진 중인 전라북도는 생태농업 중심지역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보건과 환경적 측면에서 각광받고 있는 슬로푸드 캠페인 역시 이런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패스트 푸드의 부작용을 인식하고 토종 종자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연구하고 보급하고자 하는 사업이나 정책이 정착한다면 지역주민의 삶의 질도 향상되는 것이다.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안정적으로 보급될 수 있다면 건강 역시 증진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다양한 토종 식물들이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사라져버린 이유는 생산한다 할지라도 수요가 보장되지 않는 경제적 구조에서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보존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종자보급의 의존도가 몇몇 다국적 기업에 국한된다면 종자유통으로 인한 불균형과 예속은 심화하고 경제적 부담도 가중될 것이다. 종자의 안정성과 생태적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는 건강한 종자보급이야말로 주민의 건강은 물론 환경보존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에 전라북도 종자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이다.

 미스김 라일락처럼 이름만 들어도 한국과 관련된 것이라는 특성이 연상될 수 있는 세계적 종자개량도 중요하지만, 과수, 화훼 수입품종에 지불하는 로열티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에서 우리의 토종 자원을 보존할 수 있는 대책 마련과 종자가치를 알아본 미국인 미더처럼 전문성을 갖춘 인력확보를 통한 농가보호 대책마련이 중요하다. 결국, 기본적인 여건을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중장기 계획수립이 가능할 때 비로소 종자의 가치와 전라북도 종자산업의 의미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진태<전북보건환경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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