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X의 헌신’
  • 김효정
  • 승인 2014.04.2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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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 관람 8

 17세기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인간의 48가지 감정 중 이유가 없는 유일한 감정이 ‘사랑’이라고 했다. 예뻐서, 착해서, 부자여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흔히 남녀관계에서 ‘나를 왜 사랑해’라고 묻는 질문은 상대방을 가장 곤란하게 하는 질문일 뿐만 아니라 그 질문을 하고 있는 당사자의 사랑이야말로 의심해봐야 할 감정일 것이다. 물론, 스피노자의 말에 따르면 말이다.

 그러나 가끔 사랑과 집착이 혼동될 때가 있다. 사랑을 소유의 개념으로 잘못 이해해서 상대방을 구속하고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려고 할 때 그것은 이미 사랑이길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이 남자의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일본 미스터리 스릴러의 대표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X의 헌신>에는 한 남자의 지독한 사랑(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이 그려진다. 우선 이 작품은 스토리의 중심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시작한다.

 딸과 함께 살며 도시락 매장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야스코’는 전남편의 횡포에 우발적으로 그를 죽이게 된다. 그녀의 옆집에 사는 천재 수학교사 ‘이시가미’는 ‘야스코’에 대한 연정으로 그녀를 돕기로 하고, 뛰어난 두뇌를 이용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계획에 착수한다.

 사건을 맡은 형사 ‘구사나기’는 이들의 완벽한 알리바이로 수사가 점점 미궁 속에 빠지자 친구인 물리학자 ‘유가와’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런데 사건을 통해 만난 이시가미와 유가와는 알고 보니 대학 동창으로 재학시절 뛰어난 두뇌를 겨뤘던 인재들. 유가와가 이 사건에 끼어들면서부터 이시가미의 알리바이는 점점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범인이 누구일까 온갖 추리를 해가며 결말에 가서 빵~ 터뜨리는 귀납적 결론을 선호한다면 이 작품은 별로 매력이 없을 테지만, 이것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 미스터리 스릴러지만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공통된 정서가 흐른다. 물론 이시가미와 유가와의 추리대결이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흥미롭기도 하지만, 단순히 범인 찾기가 아닌 한 남자의 사랑이 어디까지 그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감정을 함부로 정의 내리는 것을 경계한다. 그리고 그 사랑의 깊이가 너무 깊어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스산하다. 혹자는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선과 악의 개념이 없어지고,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버릴 줄 아는 그 남자에게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영화화 됐다. 원작이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만큼 영화감독들에게도 매력적인 작품이었나 보다. 사실 사건보다는 인간의 심리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어 작품 자체는 정적이다. 일본 영화는 원작에 충실한 편이지만 한국의 <용의자X>는 물리학자 ‘유가와’ 역이 없어지고 형사에게 물리학자의 논리적 추리까지 맡겼다. 덕분에 논리는 좀 약해졌으나 사랑의 정서는 더욱 강조된다. 전반적인 이야기 전개는 일본 작품이 더 짜임새 있지만 개인적으로 엔딩은 한국의 <용의자X>에 한 표 주고 싶다. 적어도 그 남자의 사랑을 헛되지 않게 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랑이라는 감정은 참 어렵다. 그저 이유가 없는 것에 토를 달면서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 사랑하는 부모님, 사랑하는 자식, 사랑하는 이성, 사랑하는 친구가 지금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지금은 그것이 우리가 사랑을 대하는 최선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김효정<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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