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의 ‘고령화 가족’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
  • 김효정
  • 승인 2014.04.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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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관람 7

 유년시절, 할머니는 아랫목에 항상 갓 지은 밥 한 공기를 묻어 놓으셨다. 집 밖에 있던 식구가 집에 돌아오면 그 밥을 꺼내어 상을 차려주시곤 하셨다. 대게 그 밥공기의 주인공은 늦게 귀가하는 아빠일 때가 많았다. 밥그릇 뚜껑을 열면 밥에서는 여전히 맛있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지금은 성능 좋은 전기밥솥이 알아서 밥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지만 할머니의 아랫목 밥 한 공기만큼 맛있는 밥을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당시 그 밥 한 공기를 보면서 하루 종일 수고했다고 상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온 중년의 자식들이 ‘엄마의 집’에 다시 하나 둘 모여든다.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에 등장하는 ‘나이만 많고 철딱서니 없는’ 자식들에게도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는 엄마가 있다.

 전과자 큰아들과 제작비 날려 먹고 흥행에 참패한 삼류영화감독 둘째아들, 두 번의 결혼 모두 실패하고 이혼한 딸까지 이 중년의 진상 삼 남매는 스물 네 평짜리 엄마의 연립주택으로 다시 꾸역꾸역 기어들어온다.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면 더없이 한심한 실패자들의 모습이지만 엄마에게는 누구보다 소중한 ‘내 강아지’들이다. 자식들을 아무 말 없이 받아주며 없는 살림이지만 기어이 고기 반찬으로 진수성찬을 차려내는 엄마는 자식들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

 잘났든 못났든 가족은 가족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부모님들의 말씀은 핏줄에 대한 강한 애착심을 보여준다. 하물며 잘난 자식보다는 못난 자식이 더 아리고 아픈 법. 이런 엄마를 두고도 매일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이 삼 남매에게는 또 복잡한 출생의 비밀까지 얽혀 있는데, 막장 드라마 같은 이들의 관계는 곧 붕괴 될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가족’이라는 끈을 결코 놓지 않는다.

 원작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파이란>을 만든 송해성 감독을 통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윤여정, 박해일, 공효진 등 배우들의 연기도 원작의 캐릭터들을 잘 살려내고 있으며, 감독은 이 작품으로 지난해 대종상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궁상스러운 가족의 모습 이면에는 남보다 더한 상처를 주는 것이 가족이지만 결국 위로를 받는 곳도 가족의 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작품 속 화자인 둘째 아들은 “평범하게 살기가 왜 이렇게 어렵냐”며 한탄한다. 평범하게 살고 싶은 소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평범한 것인가’ 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그것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무엇인지 규정 할 수 없으며 설령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굳이 나를 대입할 필요는 없다. 내 삶을 타인의 기준에 맞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이상한 가족이라고 결론지을 수도 없을뿐더러 일명 ‘루저’들의 집합체 같은 이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밥상이 된다.

 그리고 2014년 대한민국의 4월은 깊은 슬픔에 잠식당했다. 저 깊은 심연에 갇혀 있는 아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부모들의 마음은 감히 짐작도 못 하겠다. 하루빨리 아이들이 돌아와 가족과 함께 따뜻한 밥상에서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아랫목에 묻어 놓은 밥 한 공기의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김효정<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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