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는 보람
내려놓는 보람
  • 이동희
  • 승인 2014.04.0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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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신문을 펼치니 참으로 민망한 기사가 1면 머리기사를 장식하고 있다. 한국도로공사로부터 발주 받는 외주업체 직원들의 봉급에서 사장이 매월 20만원씩을 빼내갔다는 것이다.(경향신문.‘14.04.09자) 우리 속담에 ‘벼룩의 선지(간)를 내어 먹는다’는 말이 있다. 하는 짓이 몹시 잘거나 인색함을 비웃는 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외주업체 사장들은 직원을 채용할 때 ‘(어떤)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작성케 하여 직원들의 입을 막아왔다는 것이다. 더구나 외주업체 사장이 대부분 도로공사 퇴직자들이라서 한국도로공사의 관리 ? 감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갑의 횡포에 대해서 우리는 진즉에 아픈 경험을 하고 있으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잊고 있다. 힘없고 돈 없고 배경 없는 사람들(을)에 가하는 갑의 횡포가 후안무치(厚顔無恥)한 도를 넘어서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가져야 만족하고 그만 (탐심을)내려놓을 수 있을까? 권력과 금력이 한통속이 되어 벼룩의 선지를 내어 먹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앗아가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이보다 며칠 전에는 ‘황제노역’이 온 국민을 절망케 했다. 국민의 치솟는 분노와 강렬한 절망을 뒤늦게 접한 사법당국이 황제노역을 중단하고 벌금과 세금을 추징한다고 한다. 황제노역을 선고한 법원장은 이번 판결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 뒤 퇴임사에서 했다는 말이 법치와 민주주의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던 국민을 더욱 좌절케 한다. “정성을 다한다고 했으나 공감을 받는 데는 실패했다. 국민의 생각과 눈높이에 대한 통찰이 부족했다”(시사인 제343호)고 고백했다. 이를 보도한 기자의 논평이 정곡을 찌른다. ‘정성은 재벌에 다하고 공감은 국민에게 구하니 그게 성공할 리 있겠느냐?’는 것이다.

 법관의 판결이나 정치인의 행태를 정론(正論) 직필(直筆)해야 할 언론들도 소위 ‘국민의 감정’과는 동떨어지고 있음을 눈 뜨고 보아내야 하는 현실은 커다란 고통이다. 공영방송 KBS가 수신료 인상을 위해 내세우는 홍보가 지나치다. 모든 프로그램의 끝마다 시청자의 귀에 못이 박이도록 되풀이하는 자막과 멘트의 수신료 현실화가 공영방송의 제1급선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듣기에 이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영방송의 윤리마저 저버린 망발이 아닐 수 없다. 공영방송의 제1의 임무는 뭐니 뭐니 해도 바로 ‘공정방송’이 아니겠는가?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공정방송은 뒷전에 감추고 수신료만 올리면 된다고 호도하는 것은 본말이 뒤바뀐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시청자를 돈만 내는 졸(을)로 보거나 청맹과니로 여기는 무서운 만용이다.

 법정스님은 무소유(無所有)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는 것이 무소유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탐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지니는 것이 무소유의 참정신이라고 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사람이 소유 없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소유에도 금기를 발휘하여 부끄러운 소유를 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가 공연차 우리나라에 입국했다.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교향악단의 수석연주자 자리를 박차고 독주가의 길을 선택한 데 대한 술회다. “내 결심은 확고했고 부모님은 나를 믿어줬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월급도 많았다. 하지만, 돈은 중요하지 않다. 비를 막을 지붕, 누울 수 있는 침대, 그리고 날마다 먹을 보통의 음식이 있으면 된다.” 올해 26살의 반쪽 한국 사람인 그의 결심과 선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방송인 김제동의 술회를 많은 이들이 귀담아들었으면 좋겠다. 그는 <내 화두는 ‘고독 속 더불어 살기’> 라는 짤막한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요즘 느끼는 외로움의 밀도는 많이 깊어졌다. 그렇지만, 많이 슬프지 않다. 예전엔 외로우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외로운 내가 멋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렇게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가 왜 많은 젊은이들로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그가 왜 생각하는 연예인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 그의 짤막한 발언 속에 이를 짐작케 하는 여유로운 마음풍경이 담겨 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가지되 염치의 수준을 지키자는 것이다. 권력도, 금력도, 명예도, 육신의 쾌락도 무소유의 정도를 지키자는 것이다. 불필요한 것을 삼가고, 필요한 만큼만 지니고 나머지는 내려놓자는 것이다. 그럴 때 더 많은 것을 소유할 수 있으며,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선지식 법정스님이나, 첼리스트 이상 엔더스나, 방송인 김제동의 삶이 보여주고 들려주지 않는가?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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