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 김효정
  • 승인 2014.03.3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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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의 명랑한 소설 관람 5

 그녀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런데 그녀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녀와 함께 사라진 또 다른 여인. 그녀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일본의 대표 미스터리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는 평범한 삶을 살고자 소망 했던 한 여인의 평범하지 않았던 삶을 통해 문제적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표제인 ‘화차’는 ‘생전에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지옥으로 실어 나르는 불 수레’라는 다소 무시무시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과연 그 지옥이 우리와 동떨어진 먼 곳에 있는 것일까.

 형사 ‘혼마’는 어느 날 먼 친척뻘인 ‘가즈야’로부터 자신의 약혼녀인 ‘세키네 쇼코’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결혼을 앞둔 그녀가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다 과거에 개인파산을 신청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

 단순실종으로 조사를 시작하던 혼마는 시간이 갈수록 그녀 뒤에 또 다른 여인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건은 점점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 초반은 무시무시했던 일본의 버블경제가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일본 스스로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칭하는 이 경제 암흑기 시대가 초래한 각종 사회문제들이 이 소설의 모티브다. 카드빚과 신용불량, 가정경제파탄, 개인파산 등 현대 자본주의가 파생시킨 다양한 문제점들이 도미노처럼 서로 물고 물리면서 한 개인이 얼마나 처절하게 몰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스스로의 이름을 포기하고 살수 밖에 없었던 한 여자의 삶을 역순으로 파헤쳐 간다.

 그리고 종국에 드러나는 진실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그 현실이 우리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두려움은 배가된다. 작가가 전하는 현실의 공포감은 텔레비전에서 기어 나오던 ‘링’의 사다코보다 더 섬?하며,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실이 판타지보다 더 두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토막 살인과 시체유기, 방화, 개인정보도용 등등 온갖 험악한 사건들의 용의자였던 젊은 여인에 대해 묘한 연민마저 느끼게 되는 것은 지독한 현실이, 그리고 이 사회가 한 개인을 어떻게 나락의 끝으로 몰아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지난 2012년 변영주 감독의 연출로 이선균, 김민희, 조성하가 주연을 맡아 영화화되었다. 평범한 삶에 대한 갈망과 자본주의의 허상이 만들어낸 비극을 통해 현대사회의 어둠을 그려내고 있는데, 물론 20여년 전 일본의 경제파탄이라는 상황이 이 모든 사건의 핵심적인 원인을 제공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와 원작의 큰 괴리감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같은 상황의 반복. 20년의 시간은 그저 찰나의 순간일 뿐인가. 나아지려고 발버둥치지만 과거와 현재가 데자뷰를 이루며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현실은 힘들고 고되기만 하다. 여기에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소비심리와 허영심에 함몰되다 보면 현실의 공포감은 더욱 극대화되기 마련이다. 돈이 만들어 준 허세의 가면을 벗어 버리고 나의 맨 얼굴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그 공포감도 함께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20년이 지난 후에 지금과는 전혀 달라진 세상을 꿈꾸면서 말이다.

/ 김효정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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