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분별하려는 노력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분별하려는 노력이다!
  • 임규정
  • 승인 2014.03.2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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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문자로 기록되어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작품 중 하나이다. 가장 오래된 만큼이나 그 양도 방대해서, 1만 5,693행에 24권에 달한다. 그러나 이 방대한 양의 이야기는 어느 한 구석 지루한 부분 없이, 책을 펼쳐든 자리에서 끝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작품은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고 9년 후에 일어난 일들을 그린 서사시이다.

그런데 이 트로이 전쟁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한 사건이었다. 어느 날,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헬레네를 유혹하여 트로이로 데려간다. 문제는 헬레네가 당시 스파르타의 왕비라는 데 있었다.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격노하여 아내를 되찾으려 하였고, 동생의 원수를 명분으로 삼아 메넬라오스의 형 아가멤논은 그리스의 여러 도시국가에서 연합군을 모아 트로이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의 가장 명분은 납치된 헬레네를 되찾는 것이었으되, 헬레네와 직접 관련이 없는 국가들은 각자의 승리와 전리품을 얻어내고자 했다. 그러한 까닭에, 아마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연합군 내에서 불화가 생기는데,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 사이에 갈등이 조성된다. 『일리아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이제 분노의 노래가 시작된다. 불멸의 노래가.”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가운데 특별히 우리의 흥미를 끄는 인물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예언자 카산드라이다. 그녀는 트로이 전쟁이 일어날 것임을 예견했지만 그 예견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했던 비운의 인물이었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공주로,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었지만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구체적인 정황은 다르지만 아폴론의 분노를 사서 미래를 보는 능력과 함께 만인의 불신을 얻었다는 큰 줄거리는 공통적이다. 신의 분노 때문에 카산드라는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려오자마자 트로이 전쟁이 일어날 것임을 알고 사람들에게 예언했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았고, 트로이 목마가 트로이를 멸망시키리라 예언하였으나 그 또한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카산드라는 진실을 보았으나, 그 진실은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않았다.

진실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아 애가 타는 카산드라와,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데도 그녀를 믿지 못해 불행한 미래에 대비하지 못하는 트로이 사람들은 모두 불행한 자들이다. 트로이의 이러한 비극이 제 삼자인 우리에게는 그저 한 편의 우스꽝스러운 이야깃거리일 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믿지 못할 수가 있는가?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진실을 외면하고 얼마나 많은 거짓을 믿었던가? 긴 역사 속에서, 다양한 카산드라와 다양한 거짓말쟁이들이 수없이 나타나고 수없이 스러져 갔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서막이 올랐다. 선거란 다양한 후보들이 자신의 약속을 공표하면, 그에 기반하여 유권자들이 누군가를 선출하는 일이다. 때로 진실은 소박하고 불편한 경우가 많아 우리는 허황되고 화려한 거짓에 끌리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선출한 이들이 앞으로의 4년 동안 전북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것이므로, 우리에게는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진실을 직시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세상에는 진실을 말하는 자도 필요하지만, 그 진실을 알아볼 자도 필요한 법이다.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는 진실을 분별하는 매의 눈을 갖추어야 한다.

임규정 <군산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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