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의 ‘은교’
박범신의 ‘은교’
  • 김효정
  • 승인 2014.03.24 16: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효정의 명랑한 소설 관람 4

 이것은 늙어감에 대한 이야기다.

 ‘17세 소녀 은교’는 그러므로 트릭이다. 70세 노인과 17세 소녀의 로맨스 이야기는 그래서 더더욱 아니다. 어쩌면 이토록 인간이 처절하게 고독하고 외로울 수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이야기이며, 늙어가는 것은 ‘죄’가 아니고, 노인은 자연 그 자체라는 작가의 말은 그래서 더 울림이 있다.

 시인 이적요와 17세 소녀 은교, 시인의 제자 서지우와 은교, 그리고 이적요와 서지우.

 이 세 사람의 얽힌 관계들이 하나씩 퍼즐을 맞춰가는 동안, 인간의 저 밑바닥 심연에 갇혀 있던 욕망이라는 것이 꿈틀대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욕심의 응어리가 맞대응하며 수많은 감정들이 허공에서 충돌한다.

 문단에서 존경받던 시인 이적요가 죽은 후 일 년이 지난 시점에서 Q변호사는 그의 유언대로 그가 남긴 노트를 공개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시인이 자신의 제자 서지우를 죽였고, 게다가 열 일곱 살 소녀 은교를 사랑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Q변호사는 공개를 망설이게 되고, 은교를 만나 시인의 제자였던 서지우 역시 기록을 남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시작되는 세 사람의 이야기.

 미스터리 통속 소설 같은 줄거리지만 작품은 녹록치 않다. 인간의 본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사정없이 파고드는 작가의 문체는 유려하며 은유와 묘사, 거기에 독자의 호흡까지도 가지고 놀 줄 아는 행간은 무척 매력적이다.

 원래 이 작품은 박범신 작가가 개인 블로그에 연재했던 소설로 작가는 이 작품을 한 달반 만에 완성시켰다고 한다. 원제는 ‘살인 당나귀’. 소설 속 시인 이적요는 자신의 차를 ‘당나귀’라 불렀고, 그 차로 서지우를 죽이게 되는데 거기에서 비롯된 제목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책으로 다시 묶여 나오면서 제목을 ‘은교’로 바꿨다. 작가가 17년 만에 쓴 연애소설에 걸 맞는 제목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작품 ‘촐라체’, ‘고산자’와 함께 이 작품 갈망 3부작이라 명명한다.

 “<촐라체>에서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인간 의지의 수직적 한계를, <고산자>에서 역사적 시간을 통한 꿈의 수평적인 정한을, 그리고 <은교>에 이르러 비로소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가미 탐험하고 기록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은교’라는 작품이 영화화 된다고 했을 당시, 주인공 이적요 역할에 박해일이 캐스팅 되면서 다소 의아했다. 30대의 젊은 배우가 일흔 살 노인을 어떻게? 라는 의문과 함께 어설픈 분장이 영화의 몰입도를 방해할까봐 짐짓 걱정스러웠으나 영화는 뻔하지 않았고, 김고은이라는 걸쭉한 신인배우를 탄생시켰다.

 이적요와 은교, 그리고 서지우의 관계를 보면서 나이 들어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청춘은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며, 물리적인 나이와 정신의 나이는 언제나 같은 꼭지점을 향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늙은 사람’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그들을 흡사 패배자로 몰아가기 일쑤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며 사는 것일 뿐, 멋지게 늙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젊음은 알지 못한다. 그러니 ‘~처럼’, 사는 것보다 ‘~답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일흔 살처럼, 스무 살처럼 살려고 아등바등 하지 말고, 그저 ‘나 답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이값’은 그때 지불해도 늦지 않다.

/ 김효정<북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