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산 이광열을 아시나요?
효산 이광열을 아시나요?
  • 이흥재
  • 승인 2014.03.2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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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암 송성용 선생은 평소 효산에 대해 “한마디로 신사다. 항상 흰 두루마기를 입고 다니던 멋쟁이 셨다.”라고 말씀하셨다. 흔히들 서예는 ‘서여기인(書與其人)’ 이라고 해서 글씨와 인품이 둘이 아닌 하나라고 말하는데, 바로 효산은 그런 대표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글씨만큼 한 점 티 없이 맑고 고결하게 사셨던 선비였다는 것을 강암은 증언해 주고 있는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대표 한옥을 꼽으라면 단연 학인당(學仁堂)이다. 당주 백남혁이 부친 인재 백낙중의 유지를 본받겠다는 뜻에서 인(忍)자를 넣어 지은 이름인데 그 학인당 현판을 쓴 분이 바로 효산(曉山) 이광열(李光烈) 선생이다. 서체에 활달한 기운이 넘치고 결구가 안정되어 보는 이를 압도하면서도 안정된 감정을 느끼게 하는 효산의 글씨 중 대표작으로 꼽힌다.

 학인당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호남일대의 최고의 문화공간으로서 역할을 하였다. 효산은 여기에 자주 머물며-당시 서화가는 최고의 지식인이자 예술가- 외지에서 온 서화가, 예술가들과 활발한 접대와 교류를 하였다. 이로 인해 학인당은 당대 최고의 소리꾼, 서화가, 문필가 등의 공연장이자 유럽의 카페와 같은 정보교류의 마당 역할을 하였다. 해방 후 백범 김구 선생이 전주에 오셨을 때 하룻밤을 주무시고 가신 연유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다가 공원에 천양정이 있다. 천양정(穿楊亭)은 태조 이성계가 바람에 날리는 버드나무를 화살로 맞추어 꿰뚫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뜻으로 효산은 이 천양정 사장(射長)을 지냈다. 일제 강점기 총독부에서 강탈해 간 것을 수차례의 소송 끝에 결국은 되찾아와 오늘날의 천양정으로 남아 있게 만들었다.

 완산동 용머리 고개 근방에 기령당이 있다. 일종의 경로당이라 할 수 있지만 60세 이상의 이른바 선비들만 멤버가 될 수 있었다. 효산은 항상 기령당 당장을 도맡아 했다. 또 완산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면서 수없이 많은 전북의 인재를 길러내었다. 제자 중 백남혁이라든지 전라북도 지사를 지낸 박정근 등이 바로 효산의 제자들이었다.

 1935년에 호남일대에서 최초의 서예학원인 한묵회(翰墨會)가 결성되었다. 그 중심에 효산이 있었으며 또 그는 전주부사(全州府史)를 편찬하였는데 우리 지역의 숨은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정리하였다. 이렇듯 효산은 단순한 교육자와 서화가가 아니고 지역에 대한 역사의식이 분명한 사학자였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근현대 미술을 얘기할 때면 묵로 이용우나 고암 이응노를 빼놓을 수 없다. 묵로나 고암이 전주에서 살 때 효산은 항상 음으로 양으로 인정을 베풀었다. 묵로가 6.25 피난 때 전주에 내려와 줄곧 전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작고한 후 서학동 전주 교육대학교 뒷산에 묻히게 된 것도 알고 보면 모두 효산 이광열 선생과의 인연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고암 이응노 선생도 전주에서 개척사를 운영하며 효산에게 서화를 배우고 서로 깊은 교분을 나누며 영향을 받았는데 “고암의 전주 시절에 만약 효산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이응노가 있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지역 어른들이 많다. 그래서 오늘날 오히려 서울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는 학자들이 전주의 효산을 궁금해하며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 이후 전국의 서화가나 예술가들은 앞을 다투어 전주에서 전시하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당시 전주는 호남의 너른 평야에서 쏟아지는 풍부한 물산을 바탕으로 서화뿐만 아니라 판소리, 농악 등 다양한 문화예술이 폭넓게 번성했던 곳이다. 전주에서 전시하면 작품이 매번 매진되다시피 했으며 몇몇 큰 컬렉터들이 나머지 남은 작품마저 모두 거두어 갔다고 한다. 이러한 전주의 폭발적인 서화예술의 중심에 바로 효산 이광열선생이 있었던 것이다.

 등잔 밑이 어두운 까닭에 전북에 살면서도 전북 예향을 빛나게 했던 서화가들을 모르면서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제는 전북의 서화가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연구해서 문화콘텐츠로 개발해서 문화자산으로 삼아야 한다.

 봄비 촉촉이 내리는 날 효산의 숨결과 삶의 향기를 맡아 보고 싶거든 <효산 이광열- 필묵의 흐름>을 조용히 찾아보시기를 권한다.

 이흥재<전북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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