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신당’의 길 : 일상의 민주주의에서 시작하자
‘통합신당’의 길 : 일상의 민주주의에서 시작하자
  • 진성준
  • 승인 2014.03.13 2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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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과 새정치 연합의 전격적인 통합신당 창당 선언으로 지방선거 구도가 급변했다. 지난 총선과 대선의 연이은 패배 이후 활로를 찾지 못하던 야권에 모처럼 활기가 돌고 있다.

야권의 분열 속에 어부지리를 기대하며 지방선거 승리를 기점으로 일방적 국정운영을 꿈꾸던 집권 세력은 화들짝 놀라 다급해 하는 형국이다. 국가기관의 불법대선개입의혹과 일방적 대선 공약 파기에는 한결같은 침묵으로 일관했던 박근혜 대통령도 이례적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통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새누리당 지도부 역시 연일 야권 통합 선언에 대해 비난을 퍼붓고 있다.

야권이 위기 속에서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뭉쳐서 제대로 싸우고 견제하라’는 민심의 요구를 받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통합신당 창당 선언 이후 지지도 변화를 보면, 기존의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지지도의 단순 합에 비해 3~10%의 상승효과를 보인다. 창당으로 인한 시너지효과가 일정부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통합신당 창당에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오차범위 안에서 찬반 여론이 팽팽하다. 통합신당의 출범에 대해 우리 국민의 기대와 우려가 뒤섞여 있는 것이다.

‘통합신당’이라는 야권의 새로운 도전과 실험의 실체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언론과 국민들은 냉철하게 검증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방선거는 통합신당이 내놓은 결과물에 대한 엄중한 성적표가 될 것이고, 그 성적표는 향후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였다. 민주당은 무상급식에서 드러난 국민적 요구와 시대정신을 깨닫고 먼저 의제화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국민에게 완전한 신뢰를 받을 정도로 이를 체화하고 현실 정치에서 구현해내지는 못했다. 지난 총선과 대선의 연이은 패배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확장과 심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맞게 인물, 조직, 문화, 행태 등 모든 분야에서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실천하는 데까지는 민주당의 혁신이 미치지 못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국민들이 체감하는 불평등, 양극화 그리고 빈곤의 확대 재생산 문제는 근본적으로 왜곡된 노동 시장과 직결되어 있다. 즉 사회적 양극화 해소를 위한 가장 핵심적인 고리가 ‘노동’ 문제인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이라는 그의 저서를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 속에는 노동이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비록 절차적인 부분에서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우리 사회의 정치가 추상적인 개념을 논하는 이념의 장이었지, 삶과 현실을 논하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치 문화가 없었고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노동이 소외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에서 노동자 스스로 노동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노동에 대한 의식은 성숙하여 있지 않고 노조의 조직률도 매우 저조하다. 기득권 동맹은 각종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이념 공세 등으로 노동자들을 매우 강력하게 억압하고 있다. 또한, 노동시장에서 심각하게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 여성 및 청년 등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동력’도 만들어 내지 못할 만큼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새로운 통합신당은 ‘친노-비노’와 같은 실체도 내용도 없는 싸움과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 대신 ‘비전과 정책’ 그리고 ‘실천방안’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내용 있는 정당’의 길을 걸어야 한다. 이러한 길을 가기 위한 출발점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던 ‘노동’을 국민 대다수가 겪고 있는 일상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노동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평범한 생활인을 변호하고 이들과의 사회적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가사 노동자, 자영업자,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배달노동자, 해고 노동자, 프렌차이즈 사업자 등 노동시장에 참여한 다양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대변인이자, 보호자로서의 ‘정당’과 ‘정치’의 역할을 개척해야만 한다.

민주주의는 야당이 있는 정치 체제이다. 야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권위주의’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결국, 통합신당이 일상의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길을 가느냐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는 야권이 국민에게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진성준<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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