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공화국’과 언론보도
‘자살 공화국’과 언론보도
  • 김선남
  • 승인 2014.03.13 1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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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발생한 일련의 자살사건들은 우리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왔다. 특히 생활고 때문에 발생한 송파구 세 모녀 자살, 동두천 모자 자살, 광주의 부녀 자살, 익산시 일가족 자살 등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에는 SBS 리얼리티 프로그램 <짝>에 참여한 여성이 촬영 중에 갑자기 자살을 하여 세간에 충격을 주었다. 자살이 이렇게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다 보니 이제 자살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물론 자살이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수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회원국가운데 1위를 기록해 왔다. 2012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29.1명이 자살을 했다고 한다. 이는 OECD 평균치 12.5명의 2배를 넘는 수치이다. 더 놀라운 것은 10대-30대의 주요 사망원인이 자살이라는 점이다. 매일 37분마다 1명이 목숨을 끊는다고 하니, 우리사회를 ‘자살공화국’이라고 하는 것도 과장된 표현만은 아닌 것 같다.

이제 자살은 개인적, 가정적 문제로 치부하고 침묵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2004년부터 ‘자살예방 5개년 종합대책’을 추진하였고, 2011년에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문제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살이 줄지 않고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자살은 경제난, 가정불화, 취업, 질병 등과 같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때로는 언론보도가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즉 언론보도가 잠재적인 자살자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자살을 유발할 수 있다. 자살과 밀접하게 연관된 변인은 보도량, 보도기간, 매체의 지명도 등이다. 즉 자살 관련 보도량이 많고 보도 기간이 길수록 또 주요 언론사가 다루게 될수록 그 영향력이 커진다. 또 스타의 자살을 다룬 보도가 자살률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런 ‘베르테르 효과’는 우리사회에서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스타 최진실 씨의 자살사건이 보도된 후 동일한 방법을 사용한 자살시도가 증가하였던 것이 그 예이다.

우리 언론의 자살보도는 자살원인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 자살방법에 대한 상세한 보도, 자살 동기에 대한 추측 보도 등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또 텔레비전 보도보다는 신문 보도가 더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즉 잠재적인 자살자들은 신문에서 보도된 자살의 이유, 과정, 방법 등을 스크랩하여 수시로 읽어보고 이를 활용한다. 또 신문은 텔레비전보다 더 상세하고 적나라하게 사건의 내용을 전달할 수 있어서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살사건을 보도할 때 언론은 그 내용이 선정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 특히 보도내용이 자살을 ‘용납할 수 있는 행위,’ ‘정당한 행위’ 등으로 미화하거나,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언론이 자살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게 되면 잠재적인 자살자들은 선정적인 내용의 자살사건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이를 모방한 자살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일부 연구에 의하면, 잠재적 자살자는 언론을 통해서 자살 방법이나 장소 등에 관한 정보를 얻을 뿐만 아니라 자살에 대한 공감이나 동조, 자살 충동 등도 경험한다고 한다.

언론보도가 자살에 미치는 이러한 영향력을 인식한 보건복지부와 한국기자협회, 한국자살예방협회(2004)는 ‘언론의 자살 보도 기준‘을 마련해 전국 180여개 언론사 및 관련단체가 이를 실천하도록 권고하였다. 또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도 최근 자살 장소, 수단,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거나 미화하는 것을 제한하는 방송심의규정을 채택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발생한 자살사건을 보도한 기사를 보면 언론은 아직까지 이런 규정을 충실하게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자살사건들이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는 이번 기회를 통해 뉴스 제작자들은 자살사건과 관련된 보도내용이 잠재적인 자살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심각하게 상기하기 바란다.

 김선남 <원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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