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ㆍ남미여행에서 느낀 것들
중ㆍ남미여행에서 느낀 것들
  • 박기영
  • 승인 2014.03.06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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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내심을 사로잡고 또 생활의 일부로 정착되어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나의 경우도 언제부터 이었는지 그 기억조차 아리송한 일이지만 일 년이면 한 두 차례 해외지역에로 가족여행을 떠나곤 하는 것이 가족 모두의 공유된 취향이자 생활화된 연례행사로 정착되어졌다.

때문에 금년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새해가 밝아오자 마자 서둘러 해외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이십 여일이 넘는 장기일정에 그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아서 섣불리 엄두를 내기 어려운 중ㆍ남미지역에로 말이다.

가족여행의 행선지를 중ㆍ남미지역에로 선택한 것은 지금까지 내가 여행했거나 혹은 잠시 머물며 생활하였던 나라들이 줄잡아 3, 40개국에 이르고, 여행횟수 또한 5, 60여회에 이르지만 이상하게도 5대양 6대주 중에 유독 중ㆍ남미지역 만은 지금껏 여행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나는 미답지(未踏地)로 남겨진 중ㆍ남미지역을 더 늙기 전에 여행하여야 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게 되었고, 또 행여 나의 의지에 누군가 찬물(?)을 끼얹을까 봐 조금은 치기스럽게 ‘칠순여행’이라는 거창한 행사명까지 붙였다.

통상적으로 국내 여행사들이 시행하는 최장기 중ㆍ남미 패키지여행은 21일 일정으로 <미국-멕시코-쿠바-페루-브라질-파라과이-아르젠티나-칠레>를 둘러보는 옵션이다. 그리고 일정중 페루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국가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1박2일 내지 2박3일이니 비판적 시각에서 본다면 말이 좋아 ‘남미정복’이지 문자 그대로 ‘수박 겉핥기’식 여행인 셈이다.

허나 중ㆍ남미여행의 포커스를 이과수폭포와 마추픽추에 맞추고, 헛된 기대와 과도한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짧은 기간에 거대한 대륙을 섭렵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헌데 나의 경우 기대와는 달리 중ㆍ남미여행에서 보고 또 느꼈던 것이라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앎으로부터 얻어진 약간의 쾌감과 시원함 뿐이었다. 그 나머지 나의 가슴과 머릿속 모두를 채우고 있었던 것은 그 큰 대륙, 그 많은 종족 모두를 동일한 언어권, 동일한 문화권으로 바꿔 놓아버린 서구 식민제국에 대한 증오와 이제 자신들의 것이라고는 쓰다가 남겨진 땅덩어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토착 원주민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나의 뇌리를 엄습해 온 것은 만일에 일제에 의한 36년간의 식민통치가 100년 정도로 지속되어졌다면 우리의 운명은 어찌되었을까 하는 공포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귀국길에 들른 쿠바(하바나)에서 보고 느낀 바이다.

원래 중ㆍ남미여행에서 멕시코와 쿠바는 일종의 전진기지처럼 체력과 자세를 가다듬으며 지나치는 지역이지만 쿠바에서 보고 느낀 바는 남미대륙에서 얻은 희열 그 이상이었다.

쿠바의 수도 하바나를 찾다보면 호수처럼 잔잔하고 대해처럼 거침없는 푸른 카리브해가 먼저 나와 손님을 맞아 들인다. 그리고 시내를 걷다보면 격식에 구애됨이 없이 잘 정비된 신시가와 고도답게 관리ㆍ보존되고 있는 구시가는 마치 청와대 앞길을 걷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더구나 여행객의 눈길을 끄는 것은 혁명광장에는 물론 거리 곳곳에 조성되어 있는 도심공원에 어김없이 축조되어 추앙받고 있는 쿠바 건국, 쿠바혁명에 공헌한 애국선열들의 조각상들이다. 개국 시조와 건국 유공자들의 동상들이 이념과 종교 그리고 그들의 취향에 맞추어 팔이 꺽이고 목이 잘려서 동아줄에 매달려 다니는 한국적 상황과는 확연히 다르게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쿠바사람들은 서슴없이 카스트로는 애국자이며 위대한 혁명가이지만 쿠바에 사회주의를 채택한 것은 큰 잘못이었다고 말하고 들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어려운 경제상황도 잊은채 정부의 공신력과 정책의 연속성을 위해서 카스트로가 확립해 놓은 교육과 의료를 중심으로 한 사회보장은 철저히 실천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국적 시각에서 본 후진국 쿠바가 말이다.

  박기영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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